미국에 에드윈 하워드 암스트롱이라는 전기공학자가 있었다. 그는 주파수 변조(FM)를 발명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컬럼비아대 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54년 타계할 때까지 대학에서 연구에 몰입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시작해 평생 42개의 특허를 취득했다. 일부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됐고 항공우주국(NASA)과 아폴로계획에도 활용됐다. 1983년 미국 우표에 그의 초상화가 인쇄됐고 프랑스 도뇌르 훈장, 플랭클린 메달, 에디슨 상,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의 삶과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그는 RCA 등 기업과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재산을 잃고 정신적 파탄에 빠져 64세 생일날 뉴욕 아파트 13층에서 투신했다. 한 시대의 과학계를 앞장서 일궈내며 온갖 사회적 명예를 모두 얻은 그를 자살로 이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암스트롱은 1937년 자비로 첫 FM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했다. 뉴저지 알파인에서 40㎾의 낮은 출력으로 방송했는데 160㎞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하게 수신할 수 있었다. 당시 AM라디오를 주력상품으로 판매하던 RCA는 FM라디오가 주류가 되는 것을 막으려 전방위 로비를 펼쳤고 연방통신위원회(FCC)는 FM주파수 대역을 바꾸었다. 이 때문에 암스트롱은 큰 피해를 입은 반면에 RCA는 FM라디오 관련 특허까지 거머쥐었다. 양자간 특허분쟁이 벌어졌으나 RCA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암스트롱은 FM라디오망 운영과 법정 투쟁으로 재산이 다 떨어지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비극적 결말을 선택했다.
이 위대한 발명가의 비참한 최후를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창조경제 전략과 방향성 논란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창조경제의 가까운 미래 모습이 결코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기술경제를 발전시키는 바람직한 규제정책은 뭘까. 인재의 시장진입이 쉽고 보상체계가 마련돼 있으며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원활하게 수용하고 촉진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창조경제의 방아쇠가 될 프레임은 시작점에서부터 모든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줘야 한다. 이것을 찾지 못하면 정책 시행 초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술경제가 작동하는 시장에 새로운 기술이 진입할 때 기존의 지배적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수한 신기술은 기존 규제를 바꿔서라도 수용해야한다.
만약 녹음기를 도청 장비로 규제했다면 오늘날처럼 다양한 응용 제품과 서비스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풍경 사진을 찍는데 산 주인에게 돈을 내야 한다면 기술 투자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신기술은 질식했을 것이다. 꼬일대로 꼬인 규제의 이해관계에서 신기술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해외 기술을 저항 없이 수용하거나 그 틈바구니 안에서 기술 갈라파고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규제의 사전적 의미는 규칙이나 규정에 의해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음이다. 한도가 있다는 것은 영원히 시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는 한도가 있다. 규제는 100% 시장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신기술이 진입할 수 있는 30%의 시장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30%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책 입안자의 고민이 큰 상황이다. 지금은 수십 년 동안 쌓인 기술정책의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원점에서 기술사용을 규정하는 법률, 시행령, 기준 고시, 훈령 및 이에 따른 조례를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긴 호흡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자가 무한한 신뢰를 보내줘야 한다.
이경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kevin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