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존재감 없는 그들

A는 부처 정보화담당관이다. 그가 공무원이 된 건 1980년대 말이다. 전산직 7급으로 정부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IT산업이 태동하던 때다. 정보화가 우리나라를 빛낼 첨단 전략산업으로 각광 받던 시기다.

전산직 시험 경쟁은 치열했다. A 역시 3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었다. 이후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일반 행정직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부처 정보화 사업을 수행하면서 많은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최근 정보화담당관으로 승진했다. 부서 최고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서와 비교하면 직급이 낮다. 4급 과장자리다. 국실장이 이끄는 다른 부서와 비교된다.

A뿐 아니다. 다른 부처들도 대게 정보화 담당관은 4급이다. 기재부와 해수부 등 몇몇 부처만 3급(부이사관)이다. 부처 맏형인 총리실은 가장 열악하다. 과장도 아닌 팀장이 맡고 있다. 총리실 직원은 700명 정도인데 정보화부서 직원은 4명에 불과하다. 정보화담당관은 기업으로 보면 CIO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기업 CIO는 임원 대우를 받는다. 임원 회의에 참석하고 회사 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한다. 부처 CIO들은 그렇지 않다. 중요한 회의와 결정에서 소외된다. 지난달 업무보고 때도 그랬다. 부처 최대 행사지만 대부분 청와대에서 진행된 업무 보고에 참석하지 못했다. 핵심라인에서 배제되고 부처 내에서 존재감이 약하다. 지원 부서인데다 `과장급 정보화담당관`이기 때문이다. 부처 IT예산이 후순위로 밀리는 이유다.

흔히 IT를 `혁신 도구`라고 한다.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이 좋은 예다. 인천국제공항은 최근 몇 년간 연속 세계 1위 공항에 선정됐다. 이는 빠른 입출국 수속 등 IT가 가져다 준 결과다. 부처에도 이런 IT의 힘이 나타나야 한다. 부처CIO가 핵심라인에서 배제된 건 자초한 면도 있다. 혁신을 주도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단순히 업무를 지원하는 데만 머물렀다.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려는 치열함도 부족했다. 현업과 소통도 거의 하지 않는다. 타 부서에서 어떤 정보화 사업을 하는지 대부분 모른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현업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신기술 등을 치열히 공부해야 한다. IT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부처 간 협업이다. 부처 간 협업은 박근혜정부의 키워드다. 이는 IT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부처CIO가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자면 현업과 적극 소통하고 교류해 한다. 특히 부처 결정권을 쥔 고위직에 IT 현안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과 소통 능력을 갖춰야 한다. IT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이는 개인이 갖추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가 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최근 불거진 마이크로소프트와 국방부간 갈등에서 알 수 있듯 부처 CIO들이 할 일은 적지 않다. 외산 SW를 대신할 국산 SW가 없는 지, 국산 SW의 유지보수비용을 현실화할 방법은 없는 지 등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업계보다 먼저 해법을 제시하면 금상첨화다. 고객이 요구하면 뭐든지 하고, 해내는 게 우리 업계다. 부처 CIO들이 혁신 전도사로 활약하고 또 국내 IT산업 발전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방은주 전국취재 부장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