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어섰다. 가뜩이나 더운데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있으면 기기가 뿜어내는 열 때문에 더 덥다. 냉장고· TV· 조명뿐만 아니라 노트북PC·스마트폰까지 열 받은 물건이 곳곳에 널려 있다. 발열 문제는 단순히 기온을 높이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열이 많이 나면 전자제품이 작동할 때 오류가 생기고 제품 수명도 짧아진다. 열 에너지로 바뀌는 전기 에너지가 많아 전력 소모량도 커진다.
휴대용 기기는 발열량이 클수록 배터리 소모량도 많다. 열 관리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를 제조할 때도 화두로 떠올랐다.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지는 전자기기에는 예전 PC처럼 냉각팬을 다는 게 어려워 저전력 설계, 방열 소재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4 시리즈가 자사 엑시노스5 옥타코어 프로세서 대신 퀄컴 칩으로 대체한 이유도 발열이 문제됐기 때문이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등장하면서 LED 역시 열 관리가 핵심 과제가 됐다.
◇알루미늄? 마그네슘? 플라스틱?= 전자기기는 특성상 열이 날 수밖에 없다. 전자가 이동하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전선·면저항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열이 날 때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식혀주느냐가 열 관리에서 중요하다. LED 조명은 방열 소재를 가장 고민하는 분야다. 오랜 시간 동안 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열을 배출시키지 않으면 회로가 타버리고 전력 효율도 떨어진다.
우선 칩 패키지에 방열 기능을 넣어야 한다. 조명 완제품도 방열판이 필요하다. 패키지 열 배출 기술로 가장 주목 받는 기술은 칩온보드(COB) 패키지 기술이다. COB는 방열 소재 기판 위에 바로 칩을 실장한다. 열 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기판 위에 바로 칩을 올리면 중간 절연층이 없어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COB 패키지 시장에 지난해부터 진출한 썬LED는 LED 내부 온도와 기판 하부 온도를 각각 20%·16% 낮췄다.
LED 칩과 리드프레임을 보호하기 위해 씌우는 봉지재 역시 실리콘 배합비를 조절해 방열 기능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그렉 장 다우코닝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점도와 빛 굴절률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기 위한 R&D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조명 완제품의 방열판 연구도 활발하다. 가공성 때문에 알루미늄 함량이 약 80%인 알루미늄 합금을 쓰는 게 일반적이지만 함량을 대폭 높인 소재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알루미늄보다 방열 성능이 좋은 마그네슘을 사용하는 업체도 있다. 방열판 구조도 최대한 열배출이 쉬운 모양으로 고안된다. 방열판에 구멍을 뚫어 알루미늄과 공기 접촉면을 넓히고 방열판을 부채살 모양으로 돌려 붙여 크기는 줄이면서 방열 효과를 높이는 방법 등이 쓰인다.
인쇄회로기판(PCB)이나 연성동박적층판(FCCL)도 방열 기능을 개선하는 게 경쟁력이다. 루멘스는 값이 비싼 세라믹 대신 알루미늄 기판을 사용한 LED 패키지를 개발해 방열 기능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전자 기기 내부 부품의 주요한 기판으로 쓰이는 FCCL 역시 방열이 화두다. 열전도율이 2W/mK(열전도율 단위)인 FCCL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최근에는 5W/mK, 10W/mK급 FCCL도 개발됐다. 5W/mK급 FCCL은 2W/mK급에 비해 온도를 5도 이상 낮출 수 있다. 신아티앤씨는 동박층을 붙일 때 쓰는 절연층 소재를 특수 에폭시와 경화제 기술을 응용해 열전도도를 높였다. 스마트폰이나 TV에서 열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붙이는 열 방출 필름인 `그라파이트 시트`를 사용하지 않고도 유사한 방열 효과를 낼 수 있다.
◇차세대 소재를 찾아라= 지금까지 쓰이는 소재 이외에도 방열 기능이 높은 소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는 전력용 반도체의 금속 표면과 방열판 사이 접촉 저항을 줄이는 열전도 소재 `TIM(Thermal interface material)`을 개발했다. 접촉 저항을 20% 가량 낮춰 열 발생을 줄였다.
그래핀은 전자이동도가 뛰어나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열 전도율도 뛰어나 차세대 방열 소재로도 각광 받고 있다. 그래핀은 단일층의 탄소 원자막으로 흑연에서 떼어낼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인 SSCP는 그래핀 기반 방열 필름을 개발해 TV, LED 조명, 태양전지 등에 적용하고 있다. 알루미늄 방열판 보다 온도를 5~10도 낮출 수 있다.
단일벽탄소나노튜브(SWCNT)와 다중벽탄소나노튜브(MWCNT)는 그래핀과 더불어 전자이동도와 열 전도율이 좋은 소재로 거론된다. 반도체 트랜지스터에 응용하면 응답 속도를 10배 이상 높이고 열 발생도 줄일 수 있다.
◇방열 소재를 잡는 자, 미래를 잡는다= 전자제품은 점점 복잡해지고 발열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열 관리를 잘 하는 기업이 앞으로 정보기술(IT) 시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오는 2017년 방열 부재 시장은 지난 2011년보다 38.3% 증가한 4219억엔(약4조704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알루미늄, 알루미늄합금, 질화규소 같은 방열 기판 시장은 점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그라파이트 시트, 히트 파이프 등도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알루미나, 질화 알루미늄, 질화붕소, 탄소섬유 등 방열 원재료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