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송전탑과 `40일 휴전`

지루한 줄다리기 였다. 산과 들에서 주민들은 맨몸으로 덩치 큰 포크레인을 막아섰다. 빈 유모차를 붙잡고서야 걸을 수 있는 할머니도 건장한 공사 인부들과 맞섰다. 2008년 8월 착공 이후 공사는 11회나 중지됐다. 900여일간 터파기도 못했다. 그러기를 8년. 정부와 한전, 반대대책위는 지난주 국회가 마련한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데스크라인]송전탑과 `40일 휴전`

앞으로 40일 뒤에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한 원전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중재안이 나온다. 우회송전이든, 지중화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모양새다. 당초 12월에 준공목표였지만 조금 더 지연될 듯싶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해당사자가 합의점을 찾는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문가협의체가 내린 결론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데 동의했다.

핵심은 도출될 결과물이다. 주민과 야당측 위원 4인과 한전·여당측 위원 4인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립적 인사로 추천할 위원장의 손에 방향키가 쥐어질 공산이 크다.

협의체는 기존선로를 활용한 우회송전 가능여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주민 피해가 없는 고속도로 등 길을 따라 송전탑을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교량과 터널 등 약 16㎞ 구간은 또다시 지역주민과의 협상이 불가피하다.

밀양사태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지중화(밀양구간 39㎞)는 765kV를 345kV로 감압해 설치할 수 있지만 2조7000억원이라는 추가 비용과 공사기간 12년 이라는 `힘겨운 요소`를 수용해야 한다. 이것도 투명한 정보공개와 현명하고 객관적인 검증이 뒤 따랐을 때 가능하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국가 전력수급에 중요한 포인트다.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의 선례가 될 수 있다. 경상북도가 추진 중인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6차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된 신규 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국민 세금을 과도하게 투입해 해결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원전이다. 우회송전이나 지중화는 송전망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고리 3호기는 벌써 7년 전에 짓기로 결정했다. 원전건설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송전선로다. 송전탑을 못 짓게 하는 것은 결국 7년전 논의를 지금에 와서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건설될 신고리 4호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난제도 있다.

76만5000볼트(765kV)는 전기를 실어나르는 고속도로와 같다. 345kV 송전선은 국도, 154kV는 지방도로인 셈이다. 저렴하고 우수한 품질의 전력은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다. 전력이 전국의 산업단지에 공급되지 못한다면 수출경쟁력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수송물량은 넘쳐나는데 실어나를 교통수단이 없다면 물류 대란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원전 3기가 멈춰섰다. 때 이른 무더위만큼이나 마음이 답답하다. 결론 없는 평행선 대치는 블랙아웃(대정전)을 불러올 뿐이다.

밀양 사태는 다수와 소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국가 전력수급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송전탑은 목숨이 오가는 사안이 아니다. 양 한 마리가 겪는 공포나 두려움보다 양 아흔아홉 마리가 누려야 할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합의된 보상이 이뤄진다면 소수와 다수의 이익이 상충하는 부분에서 소수가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