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표류해온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이 느린 정책 결정으로 당초 계획한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시작조차 못할 위기에 처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이 재발하면 인명 구조를 위한 통신망이 없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불안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국민안전을 위해 40대 집중관리 과제 가운데 하나로 재난망 사업을 선정했으나 정작 관계기관의 실행력 부족으로 구두선에 그친다는 비판이 높다.
4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재난망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 중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당초 계획보다 2개월가량 늦춰 오는 8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미뤄지면서 내년 정부 예산에 재난망 사업과 관련한 예산이 한 푼도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 예산은 6월과 7월 부처별 예산 수립과 조정과정을 거쳐 정기국회를 앞둔 8월께 사실상 확정된다.
KDI는 재난망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테트라+상용망` `와이브로+상용망` 두 가지 방안의 경제성을 검증하고 있다. 예타 단계에서는 경제성만 검토하고 예타 이후 안행부 안(기술 방식)을 정하고 이를 국무총리실 등 상위기관이 참여하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최종 결정한다.
예타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관계기관과 협의가 필요한 주파수 할당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와이브로를 선택하려면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와 700㎒ 주파수 할당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700㎒를 받는 것을 전제로 예타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대역은 통신, 방송 업계에서 치열한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어 확보가 쉽지 않다.
주파수 할당이 상대적으로 쉬운 테트라도 마찬가지다. 모토로라 독점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권역별, 단계별 사업 방식을 구체화해야 한다. 두 방식 모두 경제성, 효율성 제고를 위해 아이덴, 롱텀에벌루션(LTE) 등 상용망 활용 범위도 재설정해야 한다.
미래부 관계자는 “예타를 통해 안행부 방침이 정해져야 주파수 할당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주파수 논의는 10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조율 과정에서 적어도 4개월 이상 시간이 소요돼 사실상 올해 안으로 정책 결정도 어렵다”고 말했다.
재난망 사업이 다시 지연되자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의 실행력도 도마에 올랐다. 안행부는 행정안전부 시절부터 최근 2년 동안 추진단장(과장급)만 3명을 교체했다. 이 때문에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전`을 강조한 새 정부 기조가 아니었다면 예타 심사 추진이 미온적이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KDI는 재난망의 시급성에도 신중한 조사만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보신주의에 급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느긋한 국가기관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청 등 현장기관은 사업이 늦어질수록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재난망 사업과 연결해 전국망 시스템을 꾸미기 위해 노후 장비 교체 등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과 기관은 재난망 사업과 별개로 예산을 확보해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망 사업추진 시 중복투자도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재난망 사업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시작해 2008년 독점·경제성 부족으로 전면중단, 2010년 재추진 결정 등 백지화와 진행을 반복했다.
재난관련 사업에 참여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10년 동안 큰 틀에서 똑같은 논의를 반복하며 굉장히 큰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으나 정작 하나도 진전되지 않아 국민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재난망 사업 일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계기로 정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 계획` 수립
2004년 KDI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사업 추진` 발표
2006~2007년 서울·경기 등 수도권 통합망 시범 구축
2008년 감사원 `예산 낭비` 발표로 사업 중단
2009년 KDI, 예비타당성 재조사 결과 `경제성 부족` 결론
2010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통신선진화추진단` 발족
2011년 행안부 재난망 기술방식 결정 위한 연구용역 실시
2012년 기술방식 2차 연구용역 수행
2013년 재난망 예비타당성 조사 돌입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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