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파이 활동 감시 목적으로 매일 수백만건의 국민 통화 기록을 수집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의심스러운 사람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 대상 무차별 감시로 파장이 클 전망이다.
6일 가디언이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미국 해외정보감독법원은 지난 4월 25일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에 모든 고객 통화 정보를 매일 국가안보국(NSA)에 전달하라는 `최고기밀법원명령(top secret court order)`을 내렸다.
통화 내용을 제외한 전화가 걸려온 곳과 위치, 횟수, 통화 시간과 시각 등 시스템에 저장되는 모든 정보가 대상이다. 국내와 해외 통화를 망라한다. 기간은 내달 19일까지 약 3개월간이다. 버라이즌 시스템에 저장되는 고객 통화 정보는 하루에도 수백만건에 이른다.
명령서에는 휴대폰 가입자의 이름, 주소, 금융정보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라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전화번호와 국제모바일가입정보(IMSI)처럼 주요 데이터가 포함되기 때문에 손쉽게 누가 언제 어디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추적 가능하다.
버라이즌 외 AT&T 등 다른 통신사도 대상에 포함됐는지, 유사한 명령이 계속돼 왔는지도 논란거리다.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이 명시돼 있지만 테러 징후가 포착될 때마다 수차례에 걸쳐 통화 기록을 수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부시 정권 시절인 2006년 USA투데이에 의해 대규모 통화 기록 수집 사실이 폭로된 바 있다. NSA는 9·11 테러 이후 테러범의 조직망 파악 목적으로 통화기록과 인터넷, 이메일 기록도 수집해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일 뿐 국민 사생활은 철저히 보호된다며 프라이버시 침해 의혹을 일축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통화 기록을 수집한다는 내용이 최고기밀법원명령 서류로 공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디언은 미국 정부가 부시 행정부 때 시작한 정보 수집 활동을 지금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한 버라이즌 고객은 “NSA는 지난 몇 달간 내가 통화한 모든 사람의 명단을 가지고 있고 내가 부모님께 전화해 단지 안부인사만 몇 마디 던지고 전화를 끊는지 여부를 안다”며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국가가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