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가 새 정부 최대 국정과제로 낙점됐다. 박근혜정부 5년을 관통할 가장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창조경제에 시동을 건 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언적 슬로건에 그치고 있다. 뒤늦게 정부는 정책 구호 수준에서 실행 계획을 내놓지만 산업계와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전자신문이 창조경제의 국내외 석학, 전문가, 정책 입안자들을 만나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창조경제의 비전과 세부 실천 방안 등을 모색해 봤다. 첫 번째 주자로 창조경제의 창시자이자 전도사로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존 호킨스 박사(호킨스어소시에이츠 대표)를 단독으로 만났다.
![창조경제의 글로벌 리더인 존 호킨스 호킨스어소시에츠 대표와 강병준 전자신문 경제벤처과학부장의 대담이 31일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https://img.etnews.com/photonews/1306/437983_20130610133604_397_0001.jpg)
대담= 강병준 경제과학벤처부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한국 정부가 창조경제 사례로 `싸이`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싸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영국·미국 사람이었으면 좀 더 많은 부를 창출했을 것입니다. 싸이 개인적으로 팬과 지명도를 넓힐 수 있겠지만 창조경제에서는 이익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문화·콘텐츠를 창조경제에서 제외하는 것은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의 창시자 겸 전도사로 불리는 존 호킨스 호킨스어소시에이츠 대표는 “한국이 창조경제를 좁은 시각에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식 창조경제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왜 한국은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CT)만이 창조경제 원동력으로 생각하는가”라며 반문한 존 호킨스 대표는 “창조경제는 모든 산업 분야에 걸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며 “특정 부분만 모델로 삼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식 `창조경제` 문화·콘텐츠가 없다”
호킨스 대표는 우리나라를 `대단한 나라`라고 표현했다. 마치 20년, 30년 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는 듯 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미국·유럽 정부도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잘 모른다”며 “한국 정부가 정확한 창조경제 마스터플랜을 가져간다는 것은 초점이 좁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킨스 대표가 평가한 `한국식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ICT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경제가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잘못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아이디어 개방성, 열린 마음(Open Mind)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는 전 분야를 망라해야 합니다. 저는 온라인미디어, 디지털 미디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자 상거래, u헬스, e뱅킹 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자 출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분야입니다.”
한국이 두 번째 방문이라는 호킨스 대표는 이전까지 런던에서 머물렀다. 당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싸이, K팝, 패션, 영화` 등이었다. 호킨스 대표는 “세계에서 유명한 한국 문화 콘텐츠, 특히 영화 산업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창조경제에서 이 분야를 제외한 것은 신기했다”고 언급했다.
◇창조경제 롤 모델…“이스라엘만 고집하지 말아야”
“모델로 꼽는 나라는 문화·정서적으로 비슷한 나라여야 한다.”
호킨스 대표가 밝힌 벤치마킹 철학이다. 그는 이스라엘식 창조경제를 벤치마킹하려는 우리나라에도 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했다. 호킨스 대표는 “이스라엘은 정치·종교적으로 매우 독특한 나라여서 문화적 유사성이 떨어진다”며 “유럽에서는 이스라엘을 창조경제 모델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미국이 가장 좋은 롤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기 동안 창의·혁신 등 전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됐습니다. 한국이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한 나라만 보면 안 됩니다. 분야별로 모델이 될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호킨스 대표가 미국을 좋은 모델로 뽑은 이유는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창조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혀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창조경제 실현의 첫 번째 요소다.
그는 “미국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종 산업을 결합시켜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킨다”며 “정부 비판, 독립성도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기업이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정부에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에 중점을 둔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브라질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게 호킨스 대표의 의견이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급성장하는 나라가 많다”며 “핀란드·덴마크·일본 중국 등에서는 연구개발(R&D) 혁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모호한 창조경제…개념 규정은 정부 역할부터”
박근혜 정부가 꺼낸 창조경제에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한다. 1990년부터 창조경제를 이야기해 온 호킨스 대표는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개인이나 기업은 각자가 다른 창조경제를 정의내릴 수 있다”며 “많은 이견을 두고 논의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창조경제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창조경제에 다가서야 한다. 정책을 다루기 때문이다.
호킨스 대표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창의성, 창의성으로 재화나 용역이 거래되는 경제가 있다”며 “창조경제는 두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는 창조경제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를 이끌어서는 안된다고 호킨스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특정 산업이나 시장 현상을 바로 잡아 창조경제에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이다. 정부는 그 다음 순위다. 정부 역할은 개인이나 기업이 활동하는 창조경제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과 기업의 역할은 무엇일까. 호킨스 대표는 협력과 융합을 제시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에 없던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강화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협력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함께 일하는가` 호킨스 대표가 던지는 융합의 방법은 존중이다. 그는 “협업 체계에서는 개인 의견이 존중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어야 한다”며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존중받아야 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호킨스 대표는 대기업 역할도 강조했다. 다방면으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창조경제 시대 대기업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도 대기업이 예전과 달리 개인이나 중소기업과 협력해 일한다고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처럼 큰 회사가 작은 회사와 일할 때 공정한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시장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다시 정부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리=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