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수학문제다. `40-32÷2=?` 한 초등학생이 답했다. “4!” 우렁찬 답변에 이과생과 문과생은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과생은 “잘 알고 있네”라며 초등학생을 칭찬했다. 문과생은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제인가” 반문하며 오답이라고 말했다. 누가 맞는 것일까.
일단 정답은 24다. 문과생 입장에서는 4라고 답한 초등학생이 틀린 셈이다. 그러나 이과생이 정답이라고 한 이유는 `!(팩토리얼)` 때문이다. 느낌표로 표시되는 수학기호 팩토리얼은 1부터 어떤 양의 정수까지 모두 곱한 것을 말한다. 4 팩토리얼(4!)은 1×2×3×4기 때문에 답은 24. 초등학생은 틀리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유머는 인문계열 학생과 이공계열 학생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느낌표 하나를 감탄으로 보느냐 수학 기호로 보느냐 차이다. 고등학교부터 나눠진 교육과정이 사고와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융합이 대세다. 융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해 이공계생에게 철학을 가르치라는 목소리가 높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인재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과연 이공계생에게 시를, 인문계생에게 수학공식을 가르친다고 융합인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조숙경 한국과학창의재단 박사는 새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그가 쓴 `잡스가 워즈워드의 시를 읽는 이유는`에서는 12가지 융합 사례를 엮었다. 그 중 두 번째 챕터에 소개된 `장미의 이름`은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사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에는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적 언명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는 기독교적 믿음과 완전 상치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신학의 시녀`일 뿐인 철학이, 그 중에서도 `악마가 발견해낸` 철학이 신학적 믿음의 근간을 뒤흔들고 수도사들의 마음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 수도사에게 금지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은 꼭 도달하고 싶은,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할 로망이었다.
철학사를 이야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이들을 `철학자`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 세계관에는 반하는 자연을 제시했다. 이 안에는 물체의 기본원소인 불·공기·흙·물이 존재한다. 현대처럼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원소와 물질에 대한 기본 뿌리를 제시한 셈이다. 플라톤 역시 자연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플라톤주의`로 부활해 옛 과학자의 탐구욕을 자극시켰다.
조 박사는 저서를 통해 “과학자이면서 역사학자, 여자이면서 엄마라는 언뜻 상반돼 보이는 역할과 경험을 토대로 융합을 설명해보려고 시도했다”며 “이 작은 시도를 감히 욕심 내본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수다 속에서 과학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융합은 서로 다르다고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장미의 이름`에서 죽어간 수도사의 로망처럼 알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학문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40-32÷2=?`는 4! 이 대답을 듣고 맞고 틀림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있게 대답하고 왜 그런 것인지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융합 인재`는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