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시간전쟁

[신화수 칼럼]시간전쟁

엄밀히 말하면 `시간 점유율` 전쟁이다. 미디어업체마다 늘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는 그 싸움이다. 이제 전면전으로 치닫는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쓴다. 이 시간 안에서 잠을 자며, 일을 하고, 쉰다. 뉴스, 드라마, 스포츠 등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도 사람마다 정해졌다. 미디어업체들은 이 시간이 어떻게든 많아지게 애를 쓰는 기업들이다. 시간이 바로 미디어 사업의 원천이다. 콘텐츠도 알고 보면 그 미끼다.

여러 조사 결과, 현대인의 미디어 소비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정보통신기술(ICT) 확산으로 언제 어디서나 미디어를 접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미디어도 많아졌다. 온라인과 모바일까지 수두룩하다. 사실상 미디어 기능을 하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포함하면 기하급수적이다. 미디어 소비가 늘었는데도 기존 미디어들은 이전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TV방송사 경영은 갈수록 팍팍하다. 시간 점유율 싸움에서 이미 밀렸기 때문이다. 유튜브, DMB 등 다른 콘텐츠 플랫폼 등장에 입지가 흔들린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지 않는다. 스마트기기로 뉴스나 SNS 검색, 게임 등 더 재미난 일에 열중한다.

통신사업자들도 시간 전쟁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예전 같으면 음성통화를 할 시간에 무료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눈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놓고 보면 메신저가 음성통화보다 훨씬 못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미디어 소비 습관이 벌써 이렇게 바뀌었다.

아예 습관을 바꿔 시간을 창출하는 기업도 있다. 구글이다. 이 검색 거인은 몇 년 전부터 무인자동차 기술에 푹 빠졌다. 시험운행도 했다. 검색업체가 도대체 왜 이 기술에 관심을 둘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인자동차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않게 해주는 기술이다. 직접 운전하지 않는 이들이 무엇을 할까. 책이나 TV를 보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겠다. 구글은 한두 시간 차에 머무는 사람들이 결국 인터넷을 검색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구글이 자동차업체보다 무인 자동차 기술 확보에 더 적극적인 이유다.

라디오방송사는 경쟁 매체의 끊임없는 등장에도 자동차를 아성으로 삼아 꿋꿋하게 버텼다. 이제 진짜 선수를 만났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과 아이튠스 서비스를 자동차에서 즐기는 이른바 `i-카` 프로젝트를 준비하니 미래가 암울하다.

모든 것이 미디어인 세상이다. 영역 구분도 사라졌다. 메신저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모두 그 구실을 한다. CNN도 한사람이 올린 글과 사진에 무력해지는 시대다. `만(萬)미디어에 대한 만(萬)미디어의 투쟁` 속에 기존 미디어와 통신사업자와 같은 거인들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기술 진보 속에 기업들은 수시로 생존 위기를 겪는다. 기술 흐름을 잘 읽는 통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등장한 기술 상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시장 파괴력이 있는지, 기존 경쟁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변화가 어디까지 번질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감을 잡을 정도는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남의 손에 맡겨놓는 격이다. 사람들의 시간을 통제할 정도의 절대반지 상품과 서비스를 가졌다면 모를까.

날로 격화하는 디지털경제 전쟁은 재화, 용역에 이어 시간이라는 제3의 요소가 전면에 등장했음을 예고한다. 아쉽게도 이를 대비하는 우리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구글, 애플, 아마존, MS와 같은 미국 기술기업 독무대다. 이들에게 우리의 시간까지 통째로 내줄 판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