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법정에 다니는 SW 개발자

사라지는 젊은 SW인재

중견 시스템통합(SI) 업체에 일하다 건강이 악화된 양 모 씨. 그의 이야기는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양 씨는 개발자였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IT 시스템들을 구축해주는 일을 맡았다. 업무는 강도 높았다. 밤 10시 퇴근은 기본이었고 2개월 내내 밤 12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일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고 강도도 높아졌다. 너무 힘들어 근무 개선을 건의하면 돌아오는 건 폭언뿐이었다.

일한 만큼의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양 씨가 일한 시간은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정해놓은 시간 외 근무는 청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실제 일한 만큼 시간 외 근무를 신청하면 어김없이 관리자의 호출이 돌아왔다. 할당한 시간 이상을 왜 적었냐는 식의 핀잔이다.

회사는 각 개인에게 8~12시간만을 시간 외 근무 또는 휴일 근무로 인정했다. 이를 넘으면 정정하라고 지시했다.

어느 순간, 서면으로 작성하던 신청이 컴퓨터로 바뀌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허울 좋은 껍데기였다. 정해진 시간 이상은 아예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스템 상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회사의 과도한 업무와 압박에 양 씨는 온몸이 망가졌다. 심한 폐렴에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절반을 잘라내기까지 했다.

양 씨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싶었다. 억울한 해고까지 당했다.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지난 2010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판사가 두 번이나 바뀌는 지루한 공방이 오갔다. 3년이 지난 올해 2월 마침내 판결이 나왔다.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라는 판결. 양 씨의 승소다.

하지만 법정 밖을 나선 그는 웃을 수 없었다. 자신이 청구한 것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인정된 것이다.

법원이 보상을 명령한 금액도 3년 동안 양 씨가 홀로 버틴 노력은 고사하고 소송비용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4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그는 또 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 회사가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다.

이번엔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상황. 상대는 대형 로펌을 고용해 2심을 준비하고 있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양 씨에 대한 항소는 취하돼야 한다”며 “IT노동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창조경제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 양 모씨와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감독하고 처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