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통계 없는 `사상누각` SW 업계

통계 없는 사상누각 SW산업

취약한 통계 기반이 소프트웨어(SW)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외 시장 분석을 위해 필요한 기초 통계자료조차 없어 기업 사업전략과 정부 정책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 시장조사기업이 작성한 자료가 가장 믿을만 한 통계”라는 게 자조 섞인 업계 반응이다.

[이슈분석]통계 없는 `사상누각` SW 업계

◇`필요한` 통계가 없다

통계청,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등에서 SW 관련 통계자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정보기술(IT) 산업 전반을 대상으로 해 SW 기업 `입맛에 맞는` 자료는 찾기 힘들다. 최근 NIPA가 내부 협의체와 유관기관 협의회를 구성해 개선에 나섰지만 업계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기업이 원하는 통계는 보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국내외 시장 현황이다. 특히 미국·유럽 등 SW 선진국의 정책과 시장상황 자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관련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자료가 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는 상황이다.

한 예로 최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SW 유지보수 요율` 관련 통계자료가 미흡하다. 수 년 전부터 적절한 유지보수 요율이 15%로 거론됐지만 수치에 대한 근거는 미약하다. 과거 연구를 거쳐 15%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정부도 공개를 꺼린다. 해외에서 유지보수 요율을 어떤 근거에 의해 얼마로 적용하는지에 대한 조사 자료는 아예 없다. 기업들도 대부분 “15%면 적절한 수준인 것 같다”면서도 “왜 이런 수치가 나왔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일부 작성된 통계자료도 기업이 원하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새로운 개념의 SW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국내 통계는 세분화 정도가 낮고 여전히 패키지·시스템·응용 SW로 구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다. 개별 SW 기업에 이 같은 통계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 모바일 SW 기업 대표는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만큼 거기에 맞는 현실적인 분류기준에 따라 통계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존에 알고 있던 종류별 SW의 정의도 새롭게 정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된 자료가 기업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NIPA 등 다양한 기관·협회가 수시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자료 공유를 위한 종합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끌고, 기업이 밀어야

SW 통계조사 체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은 정부다. 민간의 역할에는 물리적·법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통계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계청·국세청 등 다양한 기관의 자료를 열람·취합해야 한다. 부처별로 나눠진 통계자료를 열람하는 데 민간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NIPA 같은 기관이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

SW산업협회는 정부에 제출할 건의안을 준비하고 있다. SW 관련 통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기업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통계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안이다. 협회가 직접 사업에 나서는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움직임을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협회 관계자는 “SW 통계조사에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해결할 지 제대로 연구를 해보자는 내용으로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며 “통계가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필요한 지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사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통계조사를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협조와 정책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원가 공개를 거부하는 SW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확한 원가를 바탕으로 통계자료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SW 기업들은 대부분 영업 비밀을 이유로 SW 원가 공개를 꺼린다. 아직까지 사업대가 기준이 투입공수와 인건비로 만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정부가 SW 제값받기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한 SW저장소 사업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업은 SW 원가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발주기관이 SW 사업대가를 산정할 때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SW 기업들은 원가 공개를 거부했고 결국 발주기관이 원가를 입력하도록 했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낮춰야 하는 구매자가 SW 대가를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가공개는 SW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지만 원가를 공개해야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들 수 있고 이상적인 시장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면 기업이 어느 정도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