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첨단 제조업의 연구개발(R&D)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강력한 장벽으로 등장했다. 법이 R&D에 투입되는 신소재 사용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세계 일류로 도약하려면 소재기술 혁신이 절대적이지만 신소재 등록에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신설 법률을 준수하려면 자칫 개발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R&D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 공포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초안을 다음 달쯤 내놓을 예정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국가 주력 제조업이 현재 기술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소재 개발이 절실하다. 현행법인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유해법)이 연간 사용량 100㎏ 이하 소량에 등록을 면제해줬던 이유다. R&D용은 아예 사용량 제한도 두지 않고 면제했다.
하지만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는 화평법에서는 이 같은 면제 조항을 모두 없앴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보다 먼저 새로운 물질을 사용해 보는 R&D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소재를 양산하려면 신물질 테스트 및 성분 조정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하지만 화평법은 이때마다 평가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만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도 소량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2015년 1월 1일부터는 R&D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을 투입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분초를 다투는 R&D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치명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첨단산업에서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에도 뒤처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사고가 걱정되니 자동차를 만들지 말자는 것과 같다”며 “한국에서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소재의 R&D는 불가능해졌으니 해외로 연구시설을 이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은희 환경부 화학물질과장은 “현재 정책 기조는 하위법령 작업과정에서 업계와 충분히 협의하는 것”이라며 “법률상에서 모두 신고를 원칙으로 하어 하위 법령에서 예외를 두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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