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이 난무하는 시대, 디지털 광풍이 몰아치는 세상에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하루라도 어딘가에 있는 정보나 사람과 접속돼 있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체험적 접촉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생각의 발로(發露)는 발로부터, 생각의 말로(末路)는 말로만 하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철학사의 기적도 걷기에서 비롯됐으며, 책보다 더 중요한 책도 산책이다. 머리로 이해된 정보나 지식은 몸을 움직여 체화하지 않으면 나의 지식이 되기 어렵다. 인간의 신체근육은 용불용설처럼 쓸수록 발달하지만 쓰지 않으면 점차 기능이 퇴화해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검색을 거듭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벗 삼아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봄이 되면 싹이 돋는 식물과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 자연 삼라만상의 생명체가 펼치는 향연을 직접 만져보고 관찰하지 않고 인터넷 정보를 통해 간접 경험할수록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의 기능은 점차 퇴화되기 시작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단상을 육필로 기록하면서 내 몸에 각인시켜보고 책을 읽다가도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나타나면 손글씨로 메모장에 기록하는 습관을 의도적으로 반복해본다. 머리에 기억된 정보는 휘발되기 쉽지만 몸에 체화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기록으로 남는다.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 기억하려는 편리한 노력보다 기록하는 불편한 수고와 정성이 깊은 생각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기억도 오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학기 중 보고서를 써서 내라고 하면 접속-복사-붙이기 식의 글쓰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손글씨로 직접 쓰면서 깊은 사색을 하는 시간은 점차 실종되고 있는 현실, 그래서 한 학기 한 두 번은 직접 손글씨로 보고서를 써서 내라는 힘겨운 과제를 준다. 노트도 이제 갤럭시 노트가 대신하는 세상,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비효과적일 수도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