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연구기관이 공들여 확보한 특허 등 지식재산(IP)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허 유지와 관리에 따른 비용은 증가하는데 예산은 한참 모자란 탓이다. 특허가 기술사업화를 위한 원천 요소지만 특허 유지와 관리 예산 부족으로 자칫 무형의 국가 연구자산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7일 주요 정부 출연연구소에 따르면 급증하는 특허 출원과 비례해 특허 출원·등록·연차료 납부 등 특허 관리 비용도 눈덩이처럼 늘어나지만 정작 관리 예산은 간접비 항목으로 묶여 사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 관리 비용이 크게 부족해 지면서 주요 연구기관이 IP권 창출과 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정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식재산경영실장(한국연구소기술이전협회 이사)은 “특허 지출 경비가 간접비 예산에 묶여 탄력적인 운용이 힘들다”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특허 출원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출연연 가운데 가장 많은 특허를 확보한 곳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ETRI는 미국특허정보컨설팅 업체 IPIQ에서 시행한 미국특허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특허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포기한 특허가 상당수다. 국내 특허청에 등록된 ETRI 특허 2만6947건 가운데 소멸된 특허는 37%인 1만36건에 이른다. 신 실장은 “특허 관리비가 부족해 새로운 특허를 출원하기 위해 실사 후 가치가 떨어지는 특허는 포기한다”며 “연차료 등 문제로 모든 특허를 안고 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연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기초기술·산업기술연구회 소속 28개 출연연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출연연은 연간 총연구비 대비 특허 지출 경비 비율은 2.6% 정도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실제 비중은 1.3%에 불과해 지금보다 2배 이상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실정이다.
출연연 특허 경비가 부족한 것은 예산 지출이 간접비에 묶여 탄력적인 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국가 연구개발(R&D)사업 특허 지출 경비는 성과활용 지원비 항목에 과학문화활동비, 기술창업 출연·출자금과 같이 간접비로 책정돼 있다. 이전까지는 직접 경비에 포함됐지만 특허 경비는 연구 수행 이후 발생한다는 이유로 최근 기준이 바뀌었다. 이길우 KISTEP 실장은 “IP 출원·등록비용은 직접비를 내포하고 있지만 실제 운용은 간접비로 편성돼 있다”며 “간접비 집행에서 연구지원 인력 인건비·연구지원기관 운영비 우선 집행에 밀려 경비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허 관리 경비를 탄력적으로 책정하기 위해 기술사용료 수익을 지출 경비로 전환할 수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기술 수입이 생기면 직무발명 명목으로 연구자에게 50%가 돌아간다. 이후 과학기술인공제회 9%를 납부하면 41% 수준이 남는다. 남은 수입료 가운데 70%(ETRI)는 R&D에 재투자하고 기술이전 확산 기여자, 기관 운영지원비 등에 쓰고 나면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KISTEP은 “대학·출연연 특허 출원이 국내외에서 크게 증가해 경비도 많이 필요하지만 창출·관리 비용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간접비 내 특허 경비를 연구비 대비 일정 비율로 편성하거나 R&D 세액공제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개선 방안과 가이드라인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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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