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하면 연상되는 것은 일단 `태권V`다. 공상과학이나 만화영화부터 생각난다. 그 다음은 자동차 생산라인 등 각종 산업체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로봇 생산 공정이다. 그만큼 로봇은 우리네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쇳덩이`였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새 로봇은 인간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특히 로봇과 사람, 로봇과 생물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를 한 접점에서 만나게 하고 있다. 이른바 `바이오로보틱스(Biorobotics)`다.
◇내 몸에 들어온 `로봇`
작년 5월, 런던마라톤에 참여한 선수 중 유난히 많은 박수를 받은 이가 있었다. 땀방울을 흘리면서 달리는 그녀의 얼굴은 여느 선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목 아래의 몸은 남들과 뚜렷이 달랐다. 허리 아래부터 다리 전체를 지탱하는 보조 기구와 양팔에서 손끝까지 연결된 `지팡이`가 그것이다. 등쪽에 달린 거대한 `컴퓨터`도 눈길을 끌었다. 당시 32세였던 그녀의 이름은 클레어 로머스. 지난 2007년 승마 사고로 하지 마비 판정을 받은 후, 보행보조 로봇을 착용하고 기어이 결승점을 통과한 그녀는 가족의 환호 속에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상황에 처한 장애인 동료에게는 햇살 같은 희망이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클레어가 `착용한` 로봇은 이스라엘의 아르고사가 제작한 `리워크`. 이 제품은 2000년대 개발되기 시작한 장애인용 보행보조 로봇의 대표적인 상용화 가능 모델이다. 리워크 외에도 미국의 `엑소`와 일본의 `할(HAL)`이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보행보조 로봇이다.
이들의 기본 사양은 상당 부분 유사하다. 보행보조 로봇은 하지 측면 외부에서 지지하는 지지대, 엉덩이와 무릎 관절의 구동기, 그리고 등 혹은 허리에 장착된 배터리 및 운동제어용 컴퓨터 모듈로 구성된다. 20㎏ 내외의 무게가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발목과 신발까지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다. 세 제품 다 구동관절의 운동 정보를 얻기 위한 부호기와 지면과의 반력을 측정해 발 디딤 여부를 판단하는 센서가 공통으로 달려 있다.
다른 점은 상체 움직임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리워크는 상체의 기울기를 측정하는 틸트 센서를 사용하는 반면에 엑소는 무게중심 이동까지 함께 알 수 있는 관성측정장치(IMU) 센서를 사용한다. 할은 여기에 피부 표면의 미세 전기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추가해 사용자의 의도까지 알아낼 수 있다. 보행 속도는 세 로봇 모두 비장애인의 평균 속도인 시속 3㎞ 수준이다. 150~190㎝ 키에 100㎏ 이내의 성인용으로 개발됐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현실로
의료용 로봇이 진료와 재활에 힘을 써도 인간의 근본적인 생체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봇 분야가 바이오닉스다. 바이오닉스 기술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사지를 비롯해 눈과 귀, 코, 심장, 신장 등의 장기를 대체하거나 기능을 돕는 목적으로 로봇 기술을 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속 `600만불의 사나이`를 현실에 재현하는 셈이다.
바이오닉스의 대두는 인류의 고령화와 연결된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01만여명, 전체인구의 10.3%에 해당하는 고령화 사회다. 2026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20.8%에 달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고령화 관련 신경계 질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사고 및 질병에 의한 장애인이 급증하는 것 역시 같은 문제로 연결된다.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적극적인 사회, 경제적 활동을 유도해 국가 노동 생산성을 유지하는 한편, 국가 복지 재정문제의 심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한 인류의 신체적 불편을 크게 덜어줄 수 있는 `해결사`로 나선 것이 바이오닉스다. 김기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실감교류로보틱스 연구센터 박사는 “지난해 하버드대 연구팀은 침습형 전극을 사람에게 적용,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를 구현해냈으며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제어해 컵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시연에 성공했다”며 “KIST도 사용자 의도를 표면근전도(sEMG)로 인식, 로봇 손을 제어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