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무는 1998년 12월 하순 어느 날.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작고,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국회 사무총장 역임)은 김대중 대통령의 긴급 호출을 받았다. 그는 곧장 청와대로 들어갔다. 김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혼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대통령과 독대였다.

“남궁 장관, 앞으로 우리가 뭘 하면 좋겠습니까.”
정보화 전도사로 불리던 남궁 장관이었다. 그는 대통령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대통령님, 우리는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사이버코리아` 프로그램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김 대통령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졌다. 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장관 소신대로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해서 총 28조원을 투입해 4년간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보화 비전이라는 `사이버코리아21`이 등장했다.
이 무렵 이종찬 국가정보원장(현 우당장학회 이사장)도 김 대통령에게 `정보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 추진계획은 정통부에서 수립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3개월여 후인 1999년 3월 1일 오후 청와대.
“앞으로 4년간 모두 28조원을 투입해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보 인프라 확충과 지식정보 기반을 활용한 국가 전반의 생산성 향상, 그리고 정보 인프라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육성으로 1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118조원의 생산 유발효과를 내겠습니다.”
남궁석 정통부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1시간여에 걸쳐 `사이버코리아21`이라는 국가정보화 정책 방향과 비전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는 이종찬 국정원장도 배석했다.
국가정보화 종합대책은 처음이 아니었다. 체신부 시절인 1990년 4월 정보사회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1994년 11월 정통부는 1초 생활권 구현을 위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기반 구축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995년 8월에는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했고 이어 1996년 12월 정보통신산업 발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모두 국가 미래 설계도였다.
김 대통령은 보고 중간중간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고 주요 내용은 국정노트에 직접 메모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업무보고 후 남궁 장관과 악수를 하면서 “우리가 갈 길은 이 길(정보화)밖에 없다. 사이버코리아21을 잘 추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보고서를 마련하느라 수고했다”며 격려했다.
김 대통령은 이종찬 국가정보원장과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재정경제부 장관, 국회의원 역임, 현 군산대 석좌교수)으로부터 정보화에 협조를 하지 않는 계층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앞으로 정보화 추진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남궁 장관은 이날 “초고속망의 고도화와 국가 지식정보망을 구축해 `정보화 뉴딜정책`을 추진하고 학생 1000만명과 공무원 90만명, 군인 60만명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남궁 장관은 “이런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면 최대 현안인 실업자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지난해 22위에 머문 세계정보화 수준이 2002년에는 10위권에 진입하며 지식 기반산업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궁 장관은 또 “2002년까지 전국 초중고에 근거리통신망(LAN)과 인터넷을 연결하고 행정기관에서 수작업으로 제공하는 주민정보를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해 각종 증빙서류 제출 시 주민등록등·초본이나 인감증명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코리아21은 기존 정책과는 달리 민간 스타일로 만들었다. 명칭도 사이버코리아21로 정했다.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보화 비전이라는 부제(副題)도 신선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인 창조라는 말을 당시 사용했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IMF 위기 후 일자리 창출이 최대 관건이었다. 그런데 대기업 CEO 출신인 남궁 장관이 수요자 기반의 정보화 추진으로 국가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점에 김 대통령은 크게 만족했다.
사이버코리아21은 시기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사이버코리아21 계획 수립은 정통부가 1년여 전부터 준비한 야심작이었다. 정통부는 그동안 추진한 초고속망을 기반으로 21세기 정보대국 진입을 위한 기반 조성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태였다.
안병엽 당시 정통부 차관(정통부 장관, 민주당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의 증언.
“이 계획은 제가 정보화기획실장 시절에 준비를 했습니다. 국민의정부 출범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지시해 구체안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정통부는 3개월여 만에 사이버코리아21이라는 국가정보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대형 국가정책을 단기간에 입안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안 전 차관의 회고.
“사전에 준비가 없었다면 3개월여 만에 그런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내놓는 게 불가능합니다. 인프라와 자금계획을 다 수립하고 부처 협의를 하려면 시일이 더 필요합니다. 시작은 제가 했지만 마무리는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이 했습니다.”
이 기본계획 수립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들이 참여했다.
윤창번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원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의 말.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손상영 정보사회연구실장(현 연구위원)과 신일순 박사(현 인하대 교수), 황주성 박사(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를 연구팀에 배치했습니다. 연구팀 총괄은 손 박사가 담당했습니다. 사이버코리아21은 정보화의 실질적인 중추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한국전산원에서 황종성 박사(현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와 김현곤 박사(현 빅데이터전략연구센터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하원규 박사(현 책임연구원)가 연구팀에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전산원 사무실에서 주로 작업을 했다.
손 박사의 기억.
“연구팀은 기존 ATM교환기에서 초고속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본계획을 수립했어요. 나중 마무리 작업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기본계획안은 정통부로 넘어갔다.
이 계획을 마무리한 당시 업무 라인은 변재일 정보화기획실장과 유영환 정보기반심의관(정통부 차관·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실무총괄은 형태근 기획총괄과장(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이 담당했다. 이외에 이재홍 초고속망구축과장(전남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LP가스공업협회 부회장), 신순식 초고속망기획과장(충청체신청장,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역임), 이기주 정보화지원과장(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서병조 정보화제도과장(방통위 방통융합정책실장,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운영지원단장 역임) 등이 계획 입안에 참여했다. 정통부는 민간의 의견도 수차례 수렴했다.
정통부는 대통령 보고 때까지 3개월여 거의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남궁 장관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민간 스타일로 일을 추진했다.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매일 오전 출근하면 8시에 형태건 총괄과장을 집무실로 불러 업무진행 상황을 직보(直報)토록 지시했다.
형태근 당시 과장의 증언.
“정보화기획실장이 바쁠 테니까 총괄과장인 제게 매일 아침 8시 장관실에서 업무보고를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실장에게 사전에 말씀을 드리고 날마다 보고를 했어요. 남궁 장관은 기존 관행을 모두 탈피하셨습니다. 우선 명칭도 사이버코리아21로 결정하셨어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이렇게 해도 될까요` 했더니 `내가 책임질테니 걱정마라`고 하시더군요.”
실세인 김종필 국무총리와 이 국정원장이 이 일에 적극성을 보이자 관련부처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형태근 과장은 매일 오전과 오후 각 2회씩 각 실·국 총괄과장과 회의를 했다.
남궁 장관은 청와대 보고일인 3월 1일 하루 전까지 사이버코리아21 구상을 가다듬었다.
남궁 장관은 최종 보고자료를 삼성SDS에서 만들었다. 형 과장이 실무진과 삼성SDS에 가서 밤샘작업을 했다. 남궁 장관은 30분마다 전화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업무지시를 내렸다. 문구와 내용을 수정하고 가다듬었다.
형태근 과장의 계속된 말.
“남궁 장관이 보고일 아침에 내용을 완전 숙지해 직접 브리핑하셨습니다. 경영마인드와 수요 기반의 정책 입안을 한 것이 김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고 봅니다.”
사이버코리아 정책 입안에 참여한 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의 말.
“남궁 장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남궁 장관은 `이제는 디지털 불도저 시대가 온다. 내가 불도저 운전사가 되겠다”며 정보화에 열정을 다하셨습니다. 당시 500쪽 분량 방대한 내용의 사이버국토 기본계획도 보고했습니다.”
이 사이버코리아21은 그해 3월 31일 오후 4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거처 최종 계획을 확정했다.
4월 1일 오전 10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날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남궁석 장관으로부터 국정개혁보고를 받았다.
남궁 장관은 지식정보화사회에 대비한 대책을 중심으로 사이버코리아21 등 주요 정책을 보고했다.
남궁 장관은 이후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로 가는 사이버코리아21의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