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담당 조사관이 제발 살려달라고 해서 5억원을 맞춰줬습니다.”
스마트폰 부품사업을 하는 A사는 최근 세무조사 과정에서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30억원을 맞춰 주면 대충 끝내겠다는 것. 이 회사 B 사장은 평소 투명하게 실적 관리를 하자며 외부 회계감사도 열심히 받고 세금도 잘 냈다고 생각했는데 연 매출액의 1~2%에 달하는 금액을 억지로 추징해 가야겠다고 하니 기가 찼다. 모든 걸 다 공개할 테니 소송까지 가보자고 버텼다. 결국 5억원에 합의를 봤다.
외국계기업과 국내기업이 투자해 만든 합작 제조업체 B사는 지난 분기 순이익을 고스란히 추징당했다. 원료를 들여오면서 세금을 탈루했다는 명목이다. 이 회사 임원은 “원료를 수입할 때 분명히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하고 절차를 따랐는데 이제 와서 해석을 달리한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입분을 소급해서 계산하니 약 25억원이 나왔다.
지난 4월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방안`을 발표한 뒤 고강도 세무조사를 예고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강도가 예상보다 너무 크고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각 세무관서나 팀별 실적 압박이 문제다. 세무조사로 세금을 걷는 게 아니라 목표액을 정해 놓고 기업들을 압박하는 식이다. 전자장비업체 한 관계자는 “조사 결과 목표액보다 추징액이 적다고 불평을 해서 일부러 3억원을 만들어서 주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에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은 행운”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형평성도 잃었다.
박근혜정부가 임기 5년간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134조8000억원의 재원 마련과 올해 목표 세수(199조원)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세수 확보에 나오면서 나온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 79조2000억원에 비해 9조원 적은 70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특히 상반기까지 경기가 좋았던 스마트폰산업과 첨단제조업 중소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창조경제`를 추진하기 위해 창조경제를 이끄는 첨단산업 공급망(SCM)이 오히려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투명한 기업 활동을 위한다는 측면이라면 강도 높은 세무조사는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할당식으로 세금을 추징하고 무리한 조사로 인한 피해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공평하게 세금을 내도록 여러 제도를 정비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