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설정을 듣자마자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왜 할리우드 영화에는 로봇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우리나라 영화에 고릴라가 나오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미스터고`를 잘 만들면 우리나라 영화에 없었던 특이하고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 같다고 느꼈죠.”

정성진 덱스터디지털 시각효과(VFX)총괄 감독이 3년 6개월 동안 만들어온 야구 잘하는 고릴라 `링링`이 17일 드디어 대중에 선보인다. 정 감독은 이번 고릴라 링링을 비롯해 `미스터고`의 모든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미스터고는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고릴라가 주인공인 영화다. 김용화 감독은 영화를 위해 아예 덱스터디지털이라는 디지털 전문회사를 만들었다.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한 입체 영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정 감독은 “뼈대, 살, 근육, 털로 이뤄진 생명체(creature)를 입체로 만드는 것은 한국영화에서 첫 시도”라며 “고릴라의 수백만개의 털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정 감독은 바람이 불 때, 비가 내릴 때 등 다양한 환경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털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게다가 링링은 실물모형이 아닌 전부 디지털 효과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링링을 전부 디지털로 작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 감독은 “고릴라 실물모형(퍼펫)도 쓰고 디지털 고릴라도 만들려고 했으나 촬영하다 보니 디지털 퀄리티가 훨씬 좋아 욕심이 생겨 결국 디지털로 전부 가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기간과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수백만개의 털과 다양한 표정 등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직원들은 밤을 샜고 연산을 위해 슈퍼컴퓨터가 사용됐다.
영화 제작에 앞서 정 감독과 애니메이터들은 전 세계 고릴라를 찾아 다녔다. 제작진은 서울대공원 등 국내 동물원은 물론이고 고릴라로 유명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의 습성과 행동을 분석했다. 정 감독은 “고릴라가 바나나를 잡을 때 시선을 딴 데 둔다”며 이런 디테일한 관찰을 모두 영화에 녹였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기술적 완성도만으로 영화가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 기술과 감성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링링은 인간과 함께 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간적인 고릴라이기 때문에 따뜻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좀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3D 프린터로 링링을 몇 차례나 뽑아서 계속 얼굴이나 체형에 변화를 줬다.
정성진 시각효과 총괄감독은 앞으로도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정 감독은 놀아본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나는 남들 공부할 때 놀았다”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꽂혀서 애니메이션만 봤다”고 말했다. 그는 “잘 놀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놀 수 있게 할 수 있다”며 덱스터디지털 애니메이터 대부분이 정 감독과 비슷하게 놀아본 사람들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우리가 놀아본 만큼 남들이 웃고 즐기면서 놀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며 직원들을 다독인다. 그는 미스터고 또한 노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재미` 하나는 확실하다고 자신했다.
정성진 감독은 자귀모를 시작으로 무사, 올드보이, 국가대표 등 한국 영화 80여편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덱스터디지털은 100% 대한민국 순수 기술로 아시아 최초 3D 디지털 캐릭터 링링을 완성했다. 미스터고는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과 15세 매니저 소녀 웨이웨이가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하면서 겪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그렸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