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소기업 A사는 대기업 구매담당자 요구에 따라 매년 한차례씩 단가를 인하했다. 대기업 구매담당자는 원가절감 목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후 새로 부임한 구매담당자는 종전보다 더 심한 단가 5% 수시 인하를 요구했다. 구매담당자들이 본인 실적을 위해 협력사에 단가인하를 요청한 것이다.
#2. 중소기업 B사는 대기업 최저가 경쟁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았다. 기쁨도 잠시, 대기업 구매부서가 입찰결과를 무시하고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요구했다. 이미 입찰에서 낮춰질대로 낮춘 단가를 또한번 낮춘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를 상대로 부당한 `단가 후려치기`를 일삼는 것이 정부 현장 조사에서 확인됐다. 현장 조사에 응한 네 곳 가운데 한 곳 꼴로 부당 납품단가 인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조사결과를 통보하는 한편 불공정 정도가 심한 행위에 대해서는 규제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부터 두 달여간 관계 기관 합동으로 실시한 대기업 부당 납품단가 인하행위 실태조사를 15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동반성장 평가 대상인 74개 대기업과 21개 공기업의 협력사 총 6430개사를 상대로 현장·서면조사로 이뤄졌다. 이 중 20%에 해당하는 1263개사는 조사를 거부했고, 현장 조사 에 응한 902개사와 서면 조사에 응한 4265개사 사례가 집계됐다.
조사 결과 현장 조사 902개사 중 23.9%(216개사)가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로 인해 납품단가를 인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면을 포함한 전체 조사 대상에서는 6.9%(359개사)가 부당 납품단가 인하 사례를 밝혔다. 서면 조사는 관계 부처의 유사한 설문이 많아 형식적인 답변에 머문 것으로 산업부는 풀이했다.
불공정 인하행위 유형은 사례1처럼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 비율로 정기적인 단가 인하(56.8%)`가 가장 많았다. `경쟁입찰시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대금결제(28.4%·사례2)` `경제상황 변동 등 협조요청 명목으로 감액(25.1%)` 등이 뒤를 이었다.
허위 또는 과대하게 물량을 발주한 후 단가를 인하하거나 일방적 발주 취소로 감액하는 형태로 협력사를 속이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1년간 3~4회에 걸쳐 단가 인하요구를 받은 곳도 13.1%에 달했다.
산업부는 불공정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된 사안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기업청 등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협력사 보호를 위해 특정 기업이 아닌 불공정 유형 위주로 조사를 의뢰한다.
해당 유형은 △공급능력이 부족한 업체를 입찰에 끼워 넣어 의도적으로 입찰가격을 낮추는 수법 △별도 서면계약 없이 단가인하 및 지급 지연 △중소기업에 판매수수료·판촉비 등 비용 전가 △부당 특약사항 반영 △고의적인 유찰 감행 등이다. 나머지 불공정 행위는 각 기업별 차기 동반성장지수 평가에 반영된다.
산업부는 기업 경영진에 부당행위 실태를 전하는 한편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무기명 신고 형태로 바꿔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부당행위와 달리 모범 협력사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확산을 유도한다. 부당감액 발견시 내부직원을 징계한 후 개선한 기업, 저가심의위원회를 운영해 저가 입찰 폐해를 막는 기업 등이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