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기업의 협력사 넷 가운데 하나가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95개 대기업·공기업의 협력사 5167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다. 응답 기업의 23.9%가 강제로 납품단가를 낮추라는 압력을 받았다. 6.9%는 그렇게 인하했다. 중소기업들이 늘 호소했던 납품단가 부당 압력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유형도 십여 개로 다양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 비율로 깎는` 막무가내 식 단가 인하 압력이 압권이다. 이를 거론한 응답 기업이 무려 56.8%에 이른다. 이른바 `갑을`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협력사들은 대기업과 공기업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대기업은 국내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가를 끊임없이 낮춰야 한다. 수출 대기업이 특히 그렇다. 공기업도 경영 혁신 차원에서 원가 혁신을 추진한다. 이를 잘 아는 협력사들은 대기업의 원가 협상 요구를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부당 압력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정당한 사유도 예고도 없이 단가를 후려치고 발주를 취소하거나 심지어 소급적용하는 것은 협력사를 파트너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위기 때문이다. 협력사는 나중에 당할 피해를 걱정해 부당한 일이 있어도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참는다. 이를 악용하는 대기업에 협력사는 그저 말 잘 듣는 노비일 뿐이다. 공기업까지 이렇다니 한숨만 나온다.
대기업은 저마다 동반성장 구호를 외친다. 경제민주화 압력이 거세어지자 더욱 소리를 높인다. 일부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이 구호가 구두선임을 방증할 뿐이다. 대기업은 과도한 경제 민주화 입법을 우려한다. 시장주의를 무시하는 입법도 분명 있다. 감정이 아닌 차분한 논의로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기업이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다 필요 없이 납품 가격을 제대로 쳐주는 것만으로도 동반성장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동반성장을 말할 자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