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증을 지닌 형은 한번 본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 동생은 그의 보호자를 자처해 여행을 떠나고, 형의 능력 덕분에 도박장에서 큰돈을 번다. 1988년 개봉한 영화 `레인맨`의 한 장면이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지만 집중력만큼은 남보다 뛰어난 자폐인의 특징을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킨 스타트업이 성공 가도를 달린다고 16일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영국 스타트업 `하오2(Hao2)`는 3D `가상 사무실`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한다. 설립한 지 3년 된 이 회사는 직원들이 가진 독특한 능력인 `집중력`을 최대한 활용해 차별화된 3D 사무실 프로그램을 개발, 관련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내년께는 중국 지사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이 회사 직원 14명 중 12명에게 자폐 증상이 있다. 이들을 고용한 것은 일자리를 나눠주자는 차원이 아니다. 이들은 사람에겐 흥미가 없지만 가전제품이나 작은 기계 등의 분야에는 천재적인 집중력을 보인다. 하오2 외에도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SAP는 지난 5월 자폐증이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대거 고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오2 직원들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 대신 가상 사무실 프로그램을 활용해 아바타로 출근한다. 회의가 필요할 때도 역시 이 공간에 모인다. 해당 프로그램에 디자인된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면 실제 회의에 사용할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실행시킬 수도 있다.
니콜라 허버슨 하오2 CEO는 “자폐 직원들 특유의 능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새로울 것은 없다”며 “기업의 성과만 제대로 나온다면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자폐 직원들은 생활 주기가 일정하지 않으나 주로 새벽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오2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등 업무 시간을 특별히 정해놓지 않았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은 이 분야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것 못지않다는 설명이다.
허버슨 CEO는 “이들이 개발한 3D 프로그램은 놀라운 창의력과 발군의 디자인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허버슨은 자폐 성인을 주요 인력으로 삼는 비즈니스 모델로 또 다른 기업을 창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