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디스플레이 업계, 날로 커지는 중국 리스크

디스플레이도 중국발 리스크 덮치나

디스플레이 최강국 `한국`이 중국발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패널 업체들의 과잉 투자로 인한 가격 하락, 자국 패널 업체들을 위한 관세 인상, 현지 내수 시장의 경쟁 심화….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 TV 시장이라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대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계도 중국에 의해 전체 실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노동절 수요로 패널 업체들이 부진을 만회했지만 계절적 성수기에도 아랑곳않고 중국 정부의 보조금 중단과 함께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이슈분석]디스플레이 업계, 날로 커지는 중국 리스크

중국의 움직임에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가 울고 웃는 `중국 리스크`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한국이 디스플레이 최강국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전략과 기술이 여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투자→공급과잉→가격하락→또 투자

중국의 기세는 거침이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설비 투자 소식이다. 지난 2011년 말부터 8세대(2200×2500㎜) LCD 공장을 가동한 BOE와 CSOT는 풀가동에 들어가자마자 또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현재 베이징·청두·허페이에 B1·B2·B3·B4 라인을 가동하고 있으며, 허페이(B5)와 오르도스(B6) 추가 라인을 설립 중이다. 이 중 B5는 베이징에 이은 두 번째 8세대 라인이다.

CSOT도 8세대 추가 투자에 나섰다. CSOT는 중국 TV 제조사인 TCL(55%)과 심천과기투자유한공사(30%), 삼성(15%)이 합작해 만든 디스플레이 패널 회사다. BOE와 달리 민간 지분 보유율이 더 크지만,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CSOT는 두번째 8세대 라인 발주를 내년 3월경에 진행할 예정이다.

눈 앞의 수익은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해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BOE가 사업만으로 흑자를 올린 것은 2008년 이후 4년만이었다. 계속되는 만성 적자에도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애착과 지원을 등에 업고 투자는 지속돼 왔다. 흑자를 달성하자마자 투자는 더욱 탄력이 붙었다.

BOE는 B5와 B6에 이어 벌써 B7·B8·B9 투자 계획까지 수립하고 있다. B7은 베이징에, B8은 충칭(重慶)에, B9은 청두(成都)에 각각 설립할 예정이다. B9까지 설립하면 공장 개수만도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난다.

중국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최대 디스플레이 시장인 중원 땅을 현지 업체들이 장악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BOE와 CSOT가 8세대 LCD 라인에서 TV용 패널을 생산하면서 중국 패널 업체들의 현지 TV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IHS디스플레이뱅크에 따르면, 중국 패널 업체들의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11%에서 올해 2분기 32.3%로 급성장하며 한국을 제쳤다.

대만 업체들은 여전히 중국 시장 1위를 점유하고 있지만,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54.8%에서 올해 2분기 38.5%로 급락했다. 한국도 30%대에서 20%대로 줄어들었다. 한국과 대만 업계가 고스란히 타격을 받은 결과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15년까지 자국내 TV 시장 수요의 80%이상을 현지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로부터 조달한다는 목표다. 중국 현지 디스플레이 업체들을 적극 지원하는 이유다.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는 곧바로 패널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LCD 패널 가격은 최악의 불경기를 지내고 지난해에야 비로소 가격 하락세가 멈춘 듯 했으나,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장조사 업체 NPD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40~42인치 TV용 LCD 패널 가격은 6월 한달동안 10달러나 내려갔다.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면서 삼성디스플레이 등 일부 업체들은 최근 가동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리는 등 조절에 들어갔으나 역부족이었다. 중국 패널 업체들은 공급과잉 우려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의 한 패널 업체 관계자는 “설사 공급과잉이 초래돼 패널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적자는 아무런 변수도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조금, 관세 등 중국 정부 정책에 울고 웃는 디스플레이 업체들

지난 2분기 한국·대만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실적 악화는 중국 TV시장 영향이 크다. 중국 토종 패널 업체들이 선전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TV 시장 자체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중국 TV 시장은 지난해 3분기부터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이상으로 커져 유럽을 따돌리고 최대 시장이 됐다.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정책에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석달전인 지난 4월에는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이 1분기 부진을 만회하는 계기가 등장했다. 노동절을 앞둔 중국 시장 수요 덕분이었다. 그러나 노동절 이후 패널 업체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중국 정부의 가전 제품 보조금 정책이 5월 말로 만료됐기 때문이다. 재고 조정까지 시작되면서 패널 업체들의 매출은 크게 떨어졌다. 불과 한 달만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꼴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LCD TV 수요 증가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분기 LCD 패널 출하량은 전년 대비 28% 늘었지만, 2분기와 하반기에는 각각 11%, -4%로 성장률이 급속히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디스플레이 업계가 계절적 성수기인 하반기조차 실적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은 중국의 새로운 보조금 정책만을 기다리고 있다.

관세 인상도 패널 업체들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 셀과 패널 관세를 3%에서 5%로 인상했으나 최근 8%~12%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공급 과잉 우려에도 불구하고 8세대 라인을 중국에 짓는 것도 관세 탓이 크다. 중국 정부 당국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지 언론들은 관세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관세가 크게 상승하면 국내 업체들은 현지 조달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국내 7세대·8세대 LCD 라인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결국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면 도미노식 파장을 맞을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디스플레이가 포함되면 관세가 없어질 수 있지만, 중국의 반대가 거세다. 일각에서는 ITA 확대 협상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관세 인상을 검토하는 것이 ITA 적용 반대를 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최영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무는 “최근 국내 장비·부품업체들과 함께 중국 패널 업체들을 방문했는데 중국 패널 업체들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부의 막강한 지원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