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을 테마별로.”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 왕조를 이끌었던 역대 왕과 왕비의 릉이 모두 보존돼있어 더욱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자책 깊이읽기]스토리가 있는 조선왕릉 테마기행 시리즈](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7/18/454748_20130718111723_331_0001.jpg)
책을 읽고 직접 조선 왕릉을 찾아가기도 쉽습니다. 왕릉 앞까지 지하철이 다니기 때문입니다. 대개 왕릉하면 울창한 나무와 숲을 떠올리면서 도시에서 떨어진 산림 속에 자리한 유적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울 강남 한복판을 지나는 지하철 선릉역의 역명이 왕릉에서 비롯됐고, 바로 근처에 조선 왕릉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조선왕릉 테마기행 시리즈`는 1392년 탄생한 조선왕조의 시작부터 1910년 말기까지 무려 519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27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 왕릉을 `비밀테마`, `붕당과 세도테마`, `전란과 효행테마`, `비운과 추존테마`, `도심과 왕후테마`, `건국과 세종테마`의 주제로 나눠 소개하고 있습니다.
왕릉의 비밀을 다루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정성왕후 홍릉은 쌍릉의 형식으로 조성됐으나 왕비만 묻힌 채 왕의 자리는 비어있는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정성왕후는 43년 동안 내명부를 지키면서 풍파에 휘말리지 않고 권세를 휘두르지 않았으며,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극진히 모셨습니다. 이런 정성왕후를 영조는 극진히 아꼈습니다.
영조는 서오릉 지역에 정성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릉의 옆자리를 비워두고 쌍릉 형식으로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영조는 결국 그 자리에 눕지 못했습니다. 영조가 승하하자 풍수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반대에는 당시 왕위에 오른 정조도 한몫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에 의해 비통한 죽음을 당했으니 영조를 향한 증오가 능지 택정으로 표출됐습니다. 정조는 끝내 홍릉 자리를 버려두고 동구릉 내 원릉에 영조를 모셨습니다.
`지아비와 함께 잠들지 못하고 안타까움만 더해주는 빈자리를 수백 년 동안 지켜봐야 했던 정성왕후의 홍릉은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쌓인 왕릉이다`라는 본문의 내용처럼 조선 왕릉은 유적지로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주제별로 소개된 조선 왕릉으로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요.
컬툰스토리 지음, 출판사 태믹스, 가격 각 3000원
자료: 유페이퍼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