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44>또 위기, 2차 정부조직개편

“이의(異意) 없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제2차 정부조직개편 시안에 대한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의 있습니다.”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작고, 국회의원, 국회 사무총장 역임)이 나섰다.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다른 국무위원들의 시선이 남궁 장관에게 집중됐다.

“남궁 장관, 말씀하세요.”

1999년 3월 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이날 국무회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무거웠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경제부총리 역임, 현 전북대 석좌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경영진단조정위원회가 제출한 `제2차 정부조직개편 시안`을 보고했다.

이 시안은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정부가 민간 전문회사에 의뢰해 모든 부처를 대상으로 경영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경영진단조정위원회가 마련한 21세기 지식 정보사회에 대비한 조직 설계도였다.

이 개편 시안에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산업자원부에 흡수 통합해 산업기술부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기술부는 정통부의 정보산업 육성 기능과 산자부의 산업지원과 자원정책 기능, 과기부의 응용기술·원자력 관련 기능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남궁 장관은 김 대통령의 면전(面前)임에도 아랑곳없이 개편안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생전에 남궁 장관이 밝힌 발언 내용.

“정보통신부 해체 안은 3류 안입니다. 정보통신부와 문화부는 미래 새로운 경제부처입니다. 미래 분야 중요성을 너무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더욱 강화해야 할 부처를 폐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저도 기업을 경영한 민간인 출신이지만 이 안은 비전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평가에 참여한 사람들이 민간의 최고 엘리트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 안을 낸 사람들은 구시대 3류 지식인들입니다.”

다른 장관들도 정부조직개편 시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기재 행정자치부 장관(총무처 장관, 15·16대 국회의원 역임)은 “확정되지 않은 안을 언론에 발표해 공무원들의 동요가 심하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해찬 교육부 장관(국무총리 역임, 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외국에 비해 적다. 그런 만큼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공무원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경제부처 A 장관은 “과천 관가에 유력자(有力者)는 무사고(無事故)이고 무력자(無力者)는 유사고(有事故)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며 “힘 있는 부처는 그냥 놔두고 힘 없는 부처만 통폐합하는 것으로 했다”고 반발했다.

진념 위원장은 “이 안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다시 재론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반론을 폈다.

그러자 김종필 국무총리(자민련 총재 역임)가 “좀 더 시간을 두고 협의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김 대통령도 “진 위원장은 김 총리와 협의해 이 시안의 속도를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남궁 장관은 이후 청와대로 올라가 김 대통령에게 정통부 통합의 부당성을 재차 설명했다.

남궁 장관의 계속된 회고.

“1884년 일어난 갑신정변이 왜 우정총국에서 시작됐겠습니까. 당시도 세계 변화의 물결을 우정국이 가정 먼저 감지했다는 증거입니다. 정통부는 세계의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창구입니다. 그런데 정통부를 없앤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김 대통령은 잠시 숙고한 후 김종필 총리에게 `다시 한 번 검토해보시죠`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강봉균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재경경제부 장관, 국회의원 역임, 현 군산대 석좌교수)의 말.

“나도 김 대통령에게 `정통부 통합은 국민의정부 국정지표에도 어긋난다`며 `정통부 유지`를 건의했습니다.”

제2차 정부조직개편 작업은 1998년 4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획예산위원회는 김대중정부 출범 후 정부 산하기관과 출연연구기관, 공기업을 대상으로 경영혁신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의 회고록 증언.

“위원장에 취임한 후 내가 중점을 둔 것은 공공개혁이었다. IMF사태 아래서 민간은 고용 축소 등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국민 고통도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공무원도 고통을 분담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공무원 봉급을 10% 삭감했다. 그리고 1998년 11월 중앙행정기관에 사상 처음으로 민간 전문기관에 의뢰해 경영진단을 실시하게 했다. 21세기 미래 행정수요에 대해 정부 역할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었고, 정부 운영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했다” (`나라 살리기, 경제 살리기`에서)

기획예산위는 대민업무가 많은 보건복지부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을 대상으로 경영진단 시범기관으로 선정했다. 1998년 9월 17일 경영진단을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그러나 그날 청와대에서 열린 진념 기획예산위원장과 김기재 행정자치부 장관, 깅봉균 정책기획수석, 이강래 정무수석(16·17·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대표 역임) 간 4자 회의에서 모든 부처로 경영진단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존 입찰공고를 취소하고 그해 9월 30일 전 중앙부처에 경영진단을 재공고했다. 민간 컨설팅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았다. 그해 10월 22일 기획예산위는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삼성경제연구소 등 19개 기관을 경영진단기관으로 선정했다.

진단은 그해 11월 2일 시작했다.

당시 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에는 9개 팀이 있었다. 실장은 이계식 씨(작고, 제주도 부지사, 부산발전연구원장 역임)였다. 1개 팀에는 팀장 1명, 사무관 2명, 행정주사(현 주무관), 사무 여직원 1명으로 구성했다. 개혁실은 부처를 나눠 경영진단에 따른 교육과 보안관리, 각팀 간 업무 협조, 관리를 했다.

당시 이 업무를 담당했던 김현석 개혁실 팀장(현 한양대 디지털경제연구소 연구교수)의 증언.

“예상했던 대로 업무량이 엄청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를 하고 보고를 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실장과 위원장 보고, 청와대 보고, 행자부와 협의, 기타 회의 준비. 정부 개혁실 내부자료 작성과 중간보고 평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줄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개혁 고해성사`에서)

정통부와 과학기술부, 산자부, 중기청, 특허청, 기상청은 산업기술 분야로 분류해 안진회계법인과 아더앤더슨코리아가 담당했다.

그해 11월 18일 기획예산위원회는 정부조직 경영진단 작업을 조정할 경영진단조정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장은 오홍석 서울대 행정대학원장(현 명예교수)이 맡았다. 위원은 이계식 정부개혁실장과 김범일 행자부 기획관리실장(현 대구광역시장), 전성빈 서강대 교수, 김판석 연세대 교수,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조우현 숭실대 교수, 김연태 고려대 교수, 안중호 서울대 교수, 이재형 앤더슨컨설팅 대표, 강석진 GE한국 사장 등이었다.

정부부처 경영진단에는 전문컨설턴트 130여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민간 컨설팅회사에 비용 46억원을 지불했다.

1999년 3월 8일 오전 10시.

기획예산위원회는 이날 서울지방조달청 대강당에서 정부조직개편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는 오석홍 경영진단조정위원장 사회로 1·2부로 나뉘어 경영진단조정위원인 김판석 연세대 교수가 `운영시스템 개선방안`, 정용덕 서울대 교수가 `조직구조 개편방안`을 각각 발표했다. 이날 공청회장은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이 몰려 자리다툼을 벌였고 1000여명이 참석해 조직개편에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경영진단위원회는 3월 11일 공청회 의견을 수렴한 정부조직개편 건의안을 행자부와 기획예산위원회에 제출했다. 건의문 부제는 `21세기 지식 정보사회에 대비한 정부 운영 및 조직개편 방안에 대하여`였다.

경영진단위원회는 정통부와 관련해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제1안은 정보통신산업 육성기능을 산업기술부로 이관하고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화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이었다. 제2안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기구 및 인력을 조정키로 했다. 제3안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2001년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시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구상이었다.

정부는 이 안을 넘겨받아 3월 16일과 17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김종필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위원 간담회를 개최했다. 첫날 간담회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계속했다. 김종필 총리는 “정부 각 부처의 장이 아닌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기틀을 다진다는 차원에서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통폐합 대상 부처로 거론된 강창희 과기(현 국회의장), 남궁석 정통부 장관, 전승규 해양부 차관 등은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안이 정부 기능 강화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강창희 장관은 총리실까지 올라가 고성을 지르며 과기부 폐지에 강력 반발했다.

정부는 3월 23일 국민회의와 자민련과의 당정간담회를 거쳐 3월 23일 국무회의에 제2차 정부조직개편안을 보고했다. 중앙인사위원회와 기획예산처, 국정홍보처를 설치하고 계약직 공무원 도입 근거규정을 마련한다는 게 골자였다. 나머지는 현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자민련 소속 B 의원의 말.

“자민련은 정부조직개편에 반대했어요. 통합 대상이 자민련이 추천한 사람이 장관인 경제부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정협의 과정에서 자민련 입장이 반영돼 현행 체제로 가닥이 잡혔어요.”

정부는 3월 30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그해 5월 국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을 통과시켰다.

그해 5월 17일.

김기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날 공무원 8358명을 감축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및 직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제2차 조직개편안은 4개 부처를 줄이겠다던 당초 안이 2개 장관급 부처를 신설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또 한 번의 조직통합 위기가 정통부를 비켜갔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