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제로 놀아야 하는 공공기관장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올해 초 만난 정부 부처 공무원과 산하 기관장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지난해 인사가 사실상 동결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조직개편이 예상돼 마음도 들떴다. 그런데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야 갈등으로 새 정부 출범 한참 후에 국회를 통과했다. 장차관급 인사 중도 사퇴는 그렇지 않아도 늦은 내각 구성을 더욱 지연시켰다. 4월 17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임명으로 새 정부 조각이 완성됐다. 비로소 넉 달 가까이 이어진 정책 공백이 메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 지연이라는 늪에 다시 빠졌다.

당선인 시절 박 대통령은 이명박정부의 공공기관장 낙하산 인사를 질타하며 전문성을 가진 실력 있는 인재 등용을 약속했다. 그런데 취임 후 `새 정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토가 달렸다. 그토록 강조한 전문성은 사라지고 국정철학 공유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달 기관장 선임 절차 전면 중단이라는 청와대발 지시로 공공기관은 더욱 뒤숭숭해졌다. 금융권 기관장에 기획재정부(옛 경제기획원) 출신이 대거 선임된 후폭풍이다. 인사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대통령이 인선에 시간을 끌면서 공공기관장 혼돈기도 길어졌다.

기관장 사퇴로 몇 달째 공석인 기관이 있는가 하면 임기를 마친 기관장이 후임 결정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좌불안석이다. 대통령이 공공기관장 인사까지 일일이 챙기다 보니 청와대 인사위원회도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박근혜정부 창조경제는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국민이 힘을 합쳐야 실현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정부와 국민 사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정책을 국민에게 전파해야 한다. 그런데 수장 공백으로 반년 넘게 일을 하지 못한다. 갈피도 잡지 못한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들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 정 신중하게 결정할 기관장을 뺀 나머지 기관장이라도 빨리 결정해야 한다. 대선 때부터 눈치를 보는 공공기관들이다. 이대로 늦어지면 1년 내내 놀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