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자 한 명이 메일을 보내왔다. “대학 벤처동아리에서 경험을 쌓아 창업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저희 쪽에 와서 투자유치 목적의 기업설명회(IR)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서 초기에 자그마한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이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사업계획은 실현가능성보다는 포장만 그럴듯한 내용이었고, 요구하는 가치 또한 터무니없을 만큼 높은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는지 벤처기업 CEO에게 물었습니다. 동아리 선배, 벤처캐피털(VC)로부터 자문을 받고 언론을 참고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언론과 정부, VC업계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과거 `국민의 정부`에서 우리는 백년이 지나야 한번 접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벤처 붐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 벤처 붐이 오히려 피어나던 벤처 생태계를 뒤엎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왜일까. 벤처투자자가 보내온 메일에 그 답이 담겨 있다. 그때 생태계는 기술혁신이나 가치있는 창업의 장이 되기보다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의 장으로 변질됐다.
정부, 언론, 벤처인, 벤처투자자 모두가 상황을 그렇게 악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들은 생태계를 믿음이 가지 않는 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날 코스닥 시장이 맥을 못추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기반 구축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코넥스까지 그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벤처 생태계가 강한 신뢰를 주지 못하면 선순환 투자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렵다. 믿음이 가지 않는 생태계는 활성화될 수도 없다.
논어 자로(子路)편에 생태계에 관한 공자 말씀이 있다. “생태계에는 `서(庶)·부(富)·교(敎)` 삼사(三事)가 필요하다.” 여기서 `庶`는 생태계 구성원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고, `富는 구성원이 부유해져야 한다는 뜻이고, `敎`는 구성원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다. `삼사(三事)`는 위 세가지를 일컫는다. 여기에 덧붙여 공자는 “구성원은 많은데 부유하지 못하면 구성원이 생활을 꾸려가기 어렵고(庶而不富 則民生不遂), 구성원은 부유한데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이 금수(禽獸)에 가까워지니(富而不敎 則近於禽獸), 반드시 학교를 세워서 필요한 것(禮와 義)을 밝혀 가르쳐야 한다(必立學校 明禮義以敎之)”고 했다.
이를 국민의 정부 벤처 생태계에 대입해 보면, 당시 생태계에는 뛰어난 구성원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부유함도 누렸다. 삼사 가운데 서와 부는 갖춰졌다. 하지만 교에서는 개념조차 없었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없었다. 때문에 구성원은 금수같이 생태계를 투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같은 오류를 바로 잡아야만 젊은 경제가 일어설 수 없다. 삼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정부의 창업 장려정책을 입구전략으로 구성원이 많이 모이게 하고(庶), 앞에서 다룬 출구전략으로 그들이 부유해지도록 하고(富), 생태계가 믿음이 가도록 그 구성원들을 가르쳐야 한다(敎).
이 가운데 가르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서와 부를 이룬다 해도 교를 이루지 못하면 그 생태계는 괴멸하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돈을 벌려는 욕망은 새로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태계 구성원에게 그 욕망 이상의 벤처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벤처인으로의 자세와 자부심은 필요하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의 저자 제임스 콜린스가 강조한 것처럼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의지, 세상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그리고 하는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목적과 의미를 갖도록 구성원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교에 이르러야 선순환되는 생태계가 완성되고, 그래야 젊은 경제가 폭발한다.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초빙교수 dwight@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