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끝나지 않은 악몽 `키코(KIKO)`

끝나지 않은 악몽 키코

지난 18일 대법원.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와 관련된 사안이다. 공개 변론에서는 키코 소송 양측 대리인의 한 치 양보 없는 법정공방이 진행됐다. 대법원은 이르면 다음 달 5년을 끌어온 키코 사태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이슈분석]끝나지 않은 악몽 `키코(KIKO)`

2008년 4월부터 5월 사이 환율이 급등하면서 터지기 시작한 키코 사태. 사건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수출 중소기업에 `끝나지 않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환율 하락을 예상하고 들어놨던 환 헤지 상품인 키코는 예상 밖의 급격한 환율 상승으로 수출 기업들에게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2010년 10월 28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키코 피해기업 규모는 총 738개사, 피해 금액은 총 3조2247억 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금액이지만, 이 수치도 피해의 일부에 그친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피해업체가 약 1000개,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규모 뿐 아니라 피해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몰려 있다는 점은 더 심각하다. 김광림 의원(새누리당)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8년 8월부터 2009년 7월까지 키코 피해 기업의 총 피해액 규모만 약 3조4000억원에 달한다.

조사에 따르면 키코 총 피해기업 수는 517개. 이중 대기업이 46개(9%), 중소기업이 471개(91%)다. 피해금액은 대기업 9528억원(25%), 중소기업이 2조4000억원(72%)이다. 대부분 피해가 중소기업에 집중됐다. 이에 피해를 입은 기업은 지난 2008년 5월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후 1심과 2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에서 3심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공대위에 가입된 242개사의 손실액은 2조2399억원.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 기업의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당 기업의 상당수는 부채비율 증가 및 자본잠식으로 인한 금융거래 중단 위기, 신용도 하락으로 대출한도 축소 및 이자율 상승 등 어려움이 가중되며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공대위 회원사 242개 중 20개가 파산했고, 18개 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거나 은행에 경영권을 빼앗겼다. 피해기업 연쇄 부도위기로 인한 협력업체 포함 85만여 명이 직간접 실직 위기가 초래됐다. 공대위 가입 피해기업 종업원 수만 약 3만1316명에 달한다. 은행과 소송을 시작했던 220개 회사 중 71곳은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소송을 포기했다. 피해 기업은 사태 이전만 해도 대부분 신용등급 `BBB` 이상으로 연 5~6% 금리에 대출을 받던 우량기업이다. 그러나 키코 사태로 신용등급이 하락해 이자율이 연 12~13%로 올랐다.

기업은 키코 손실을 처리하기 위해 거래 은행들로부터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만기는 계속 연장되고 있지만 최근 수출 부진 등으로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면서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키코 관련 피해기업이 민사소송에 패소, 피해액이 확정채무가 되면 중소기업 부도 및 협력업체 줄도산, 대규모 투자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공대위 측의 전망이다.

1심과 2심을 거치며 항소를 포기한 기업도 많지만, 현재 각급법원에만 270여건의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법원에도 63건의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각 재판부의 판결은 제각각이다. 사안별로 기업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이 다르다. 18일 진행됐던 대법원 공개변론이 주목받은 이유다. 대법원의 판단이 다른 관련 소송에 대한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체의 한 사장은 “현재로서는 판결을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난 5년 간 수많은 기업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고, 현재까지 그 피해가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악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