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건수 채우기식 연구개발은 이제 그만

최근 정부가 부쩍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R&D) 성과를 강조한다. 해마다 수조원의 예산을 들여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지만 결과물 활용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평가기준이 특허 출원 건수나 논문 제출 건수 등에 치우쳐 있다 보니 실수요자인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기업은 신제품에 연구 결과를 반영하려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주관하는 연구과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정작 출연연은 정부 평가 기준 달성이 관심사다보니 엇박자가 나게 마련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기업 75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조사 결과, 열에 여덟 곳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이전해 줄 기업·출연연 연계 전담 기관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수요가 연구과제에 잘 반영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35%가 `아니다`고 답했다. 기업은 정부 R&D 정책과 기업수요가 일치하지 않고 출연연에 기업수요를 반영할 채널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기업과 출연연 사이에 소통하고 협력할 정보나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과거에도 출연연이나 대학 R&D 성과를 올리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정부 출연연 등 중심의 R&D만으로는 기업 수요를 만족할 수 없다는 판단에 기업이나 대학이 함께 참여할 때 과제 선정 가산점을 부여했다. 과제에 따라 기업이 사업을 주관하게 하고 예산도 직접 운용하게 하기도 했다. 정작 수요자 중심 R&D 정책을 편다면서 평가는 SCI급 논문이나 특허건수, 과제 달성률 등으로 매기다 보니 기업이 만족하는 R&D로 연결되지 못했다.

정부 R&D 정책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기초 원천기술 개발과 함께 바로 상용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R&D도 강화한다. 기업과 연구기관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전담 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연구기관도 수요자 입장에서 과제를 기획하고 소통하면서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정부는 연구현장의 손톱 밑 가시로 지적돼 온 `연구비 불인정 기준`을 연구자 친화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개발을 위한 개발 보다는 개발한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