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5가 아예 공짜입니다. 통신 요금도 할인해주고 현금 포인트도 2만엔이나 드립니다.”
25일 니혼게이자이가 전한 도쿄 이케부쿠로 인근 가전양판점 호객 풍경이다. 양판점 직원은 고함에 가까운 필사적 목소리로 지금이 아이폰5를 살 최적의 기회라고 외쳤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일본 전체가 스마트폰 출혈경쟁의 늪에 빠졌다. 번호이동만 하면 아이폰5든 갤럭시S4든 60만원 가까이 버는 이해할 수 없는 스마트폰 유통의 복마전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아이폰5 가입 조건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공짜지만 내용은 천양지차다. 일본에서 새로 등장한 공짜 상품은 `일괄 0엔`, 기존 상품은 `실질 0엔`이라고 부른다. 실질 0엔은 약정 기간 동안 단말기 가격을 매월 깎아주는 조건이다. 5만1360엔짜리 아이폰5 가격을 24개월 동안 월 2140엔씩 빼준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보조금이다. 일괄 0엔은 단말기 값을 처음부터 받지 않고 통신비를 실질 0엔과 같은 금액만큼 빼주는 방식이다. 결국 통신비 지출이 5만1360엔, 57만3300원을 아낄 수 있다.
아이폰을 파는 소프트뱅크와 KDDI 모두 일괄 0엔을 도입했다. 타사에서 번호이동한 고객이 대상이다. 다만 소프트뱅크는 유료 부가 서비스에 가입하면 2만엔 현금 포인트를 주고 KDDI는 조건도 현금 포인트도 없는 점이 다르다.
파격적 가격 인하는 비단 아이폰뿐만이 아니다. 갤럭시S4도 마찬가지다. NTT도코모는 번호이동 고객에게 갤럭시S4를 일괄 0엔에 판매하면서 2만엔 현금 포인트를 준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판매자 보조금이라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펴면서 5만엔 안팎의 부담이 줄어든다. 세계 시장을 양분하는 프리미엄폰의 대명사 아이폰5와 갤럭시S4가 일본에서는 공짜폰에서 더 떨어져 50만원 이상을 주는 마이너스폰 신세로 전락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에서 이 정도 파격적 할인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출혈경쟁의 원인은 스마트폰 판매 부진이다. 2010년 가을 아이폰이 들어온 이후 일본 스마트폰 시장은 열풍, 그 자체였다. 전년 대비 200~300% 판매 신장이 이어지던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 시기는 지난해 10월부터다. 9월 아이폰5가 나왔지만 예상보다 열기가 높지 않았다.
올해 들어 상황의 더욱 악화됐다. 급기야 3월에는 처음으로 판매 대수가 1년 전보다 5% 정도 줄었다. 1분기 전체로도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한 명이라도 더 고객을 빼내려는 이동통신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졌고 일괄 0엔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나온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BCN의 미치코시 이치로 수석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시장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어 판매 추이가 평행선을 그릴 전망”이라며 “만일 지금처럼 파격적 할인이 고객에게 먹히지 않으면 스마트폰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이통사와 스마트폰 업계의 시름도 깊어진다. 그나마 인기가 높은 아이폰이 엄청난 할인 공세를 펴는데 일본 스마트폰이 제값을 받을 재간이 없다. 이통사 역시 출혈 경쟁이 길어지면 수익성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유일한 희망은 차기 아이폰이다. 아이폰 선호도가 특히 높은 일본의 특성을 감안하면 올 가을로 예상되는 아이폰 신제품은 흥행 보증수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미치코시 애널리스트는 “차기 아이폰에서 고객이 감탄할 혁신성이 없다면 스마트폰 시장 전체가 오랜 부진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공짜 아이폰5 신구 방식 비교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