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물갈이

오래된 어항이 하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항 속 물은 탁해지고 내벽에는 이끼가 끼기 시작한다. 안에 있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밖에서 보기에도 답답해질 즈음 필요한 것이 바로 `물갈이`다.

갑자기 물갈이를 떠올린 것은 현대·기아차 차세대 연구개발 본산인 남양연구소의 인사 때문이다. 남양연구소는 최근 20여년 이상 연구 경력을 가진 팀장, 파트장, 책임연구원 70여명을 따로 모아 `R&D품질강화추진단`을 신설했다. 연구개발본부장 직속 조직인 추진단은 앞으로 중장기적인 연구개발 품질 개선을 위해 그동안의 노하우를 연구소 전체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의 배경을 놓고 내·외부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인사 대상이 된 연구원들의 기준이 나이라는 점에서 남양연구소 인적 쇄신을 위한 물갈이 인사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고 경영층에서 힘을 실어줬다고는 하지만 추진단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린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북미 연비 과장 논란, 브레이크등 스위치 불량에 따른 대규모 리콜 등 품질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이 같은 품질 이슈를 신속히 바로잡지 않으면 도요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카드 중의 하나로 물갈이 인사가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조직에 긴장감을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카드 중 하나가 물갈이기 때문이다. 또 정의선 부회장 후계 구도를 완성하기 전에 남양연구소를 젊고 신선한 조직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최고위층의 전략적인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현대·기아차가 이번 인사를 통해 남양연구소에 활기를 불어넣고 진정한 품질 혁신과 세대교체에 성공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