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산에 휘둘리는 DVR산업 활로는 있다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업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시달린다. 이 상황은 우리 기술제조산업 정책이 가야할 방향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이를 극복하는 정부와 업계의 노력을 상황이 비슷한 다른 기술제조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DVR 가격이 국산 제품의 절반 가격에 불과한 것은 핵심 부품인 영상처리 칩에서 비롯한다. 이 칩을 중국 팹리스 업체인 하이실리콘이 사실상 독점 공급한다. 중국의 글로벌 통신기술업체 화웨이의 자회사다. 이 회사가 공급하는 칩 가격은 경쟁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팹리스 업체로부터 공급받던 우리 DVR업체들도 어쩔 수 없이 하이실리콘의 칩을 사다 쓸 수밖에 없을 정도다. 더욱이 우리 업체들은 중국 업체와 같은 값에 칩을 사도 관세 부담 때문에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긴다.

하이실리콘이 이렇게 싼 값에 칩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중국 DVR업체를 중심으로 물량을 많이 확보한 덕분이다. 중국 DVR업체들도 원가 경쟁력에 기반을 둔 저가를 무기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이젠 우리 업체들이 강세인 고급(하이엔드) 시장도 넘본다. 국산 칩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선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문제는 100억원 이상 들어가는 팹리스 설비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DVR 업체들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규모다. 이럴 때 정부가 나서야 한다. DVR는 한때 끝날 사업이 아니라 차세대 IP카메라나 네트워크비디오녹화기(NVR) 등으로 진화한다. 정부로선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이다. 팹 설비가 있는 대기업과 팹리스를 묶어 칩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으면 우리 DVR업체는 물론이고 중국 업체에도 공급할 정도의 국산 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대기업과 팹리스는 물량만 확보된다면 투자한다.

DVR업체도 칩 구매, 유통망 개선, 심지어 연구개발(R&D)까지 힘을 합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 판세는 국내 경쟁사가 사라진다고 나머지 회사가 득을 볼 상황이 아니다. 세계 시장은 아직 성장세다. 업계가 공동으로 할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