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P씨는 드디어 베트남 정부로부터 소망하던 DMB사업 가허가를 받았다. 기쁨도 잠시 허가만 나오면 투자가 문제없다던 벤처투자회사가 투자를 외면했다. 가허가가 아니라 영업 본 허가라야 한다는 의외의 통보였다. 방송허가는 가허가 후 1년이면 자동으로 나오는 게 상례다. 2년간 기술시험(1년)과 상용시험(1년)을 거쳐 받은 가허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매출이 발생하려면 시설설치와 마케팅을 거쳐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금융관례상 최소한의 매출과 이익이 발생해야 투자자금 회수를 보장할 수 있고 투자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 5억~6억원이 소요되는 필요불가분한 자금을 단칼에 거부했다. 사업성공의 꿈에 부푼 P씨를 눈 깜박할 사이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내동댕이친 꼴이 됐다.
![[미래포럼]우리 벤처기업 죽음의 계곡을 넘게 하자](https://img.etnews.com/photonews/1308/459716_20130805142343_980_0002.jpg)
벤처기업에는 두 번의 피치 못할 큰 자금소요가 있다. 첫째, 사업을 시작할 때 필요한 개업자금이다. 개업자금은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으로 구성된다. 사업을 시작할 때 자기자본 조달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타인자본을 조달할 때는 신기술 유망성을 증명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용개발을 마친 후 생산설비를 구축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마케팅을 시작하는 단계다. 개업자금은 기술력과 시장성만 인정되면 정부나 투자사 투자를 받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두 번째 단계는 해당 기업이 책임지고 투자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인식 때문에 정부 투자가 막혀 있다. 제품을 팔아 이익이 나려면 상당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금융기관 융자도 막혀 있는 실정이다. 벤처투자사 인식도 금융기관과 다르지 않다. 이 시기는 개인 담보능력도 모두 소진된 때여서 신용 외에는 담보가 없는 게 벤처의 현실이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시설자금과 마케팅 자금 부족으로 죽음의 계곡이라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어떤가. 투자회사가 투자를 결정할 때 원천기술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용기술개발, 설비투자, 마케팅, 최소 1회전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충분히 검토 분석한다. 소요자금도 단계별로 적정하게 책정해 새 벤처를 성공시킨다. 리드타임을 충분히 고려한 결과다. 이렇게 해도 벤처 성공률은 10% 미만이지만 한 기업의 성공이 9개 기업의 실패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5년 이상의 리드타임을 감내할 수 있는지가 성공 포인트다. 우리나라를 보자. 현 정부는 `성장사다리펀드`를 출범해 앞으로 3년간 6조원을 조성해 다른 산업에도 파급효과가 큰 벤처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운영방식을 답습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2009년 지식경제부가 내놓은 1조32억원 규모의 `신성장동력펀드`는 출범 4년이 지났는데도 자금의 반도 못 썼다. 필요 투자 기간과 회수 기간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 책임자의 임기가 대부분 3년에 불과하므로 3년 이내에 이익이 안 나는 벤처 투자 건에는 투자결정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돈도 문제지만 의식변화와 제도개혁의 문제다.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살펴보자. 우선 벤처투자를 보는 정부와 경제사회계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벤처투자는 5년 이상의 리드타임을 감안해야 한다. 둘째, 벤처투자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미국처럼 원천기술 검토에서부터 이익을 낼 때까지를 장기적으로 판단 지원하는 제도가 전제돼야 한다. 셋째, 개방혁신(Open Innovation)이 이뤄져야 한다. 벤처의 초기기술개발 성과가 관계기관과 회사에 공유되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개방되고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의식 변화와 제도 개혁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 정권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박근혜정부 안에 성공할 수 없다. 박근혜정부가 공표한 `벤처기업 40만개 일자리를 확보` 목표 달성은 정권적 차원의 강력한 결단 외에 방법이 없다.
박영일 코레스텔 사장 ceo@corres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