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바마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자인가

미국 오바마 정부가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을 선택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애플 제품 수입 금지라는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 USTR 결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인 셈이다. 애플은 수입 금지와 이미지 추락이라는 `벼랑 끝 위기`로부터 탈출했다.

미 정부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애플이 아무리 자국 제조업에 기여하는 게 없다고 해도 엄연히 미국 기업이다. 더욱이 미국 기술기업의 상징이다. ITC 결정 이후 미국 기업은 물론 정치권까지 잇따라 애플을 옹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늘 외친 자유무역 의지를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비판보다 자국 내 기업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정치적 판단 자체야 뭐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바마 정부에 다가올 후폭풍이 만만찮다. ITC는 준사법기관이다. 이 기관이 특허 침해라고 판단한 제품을 시장에 마음대로 유통해도 좋다고 허용한 것이 이번 거부권 행사다. ITC는 오는 9일 삼성전자가 애플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수입 금지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일 여기서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보호무역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거부권 행사 명분으로 적용한 `프랜드(FRAND)` 원칙이다. 표준특허 보유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으로 사용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적용한 표준특허의 권리를 침해해도 수입을 막아선 안 된다는 결정이 거부권 행사다. ITC가 9일 침해 여부를 결정할 애플 특허는 표준특허가 아닌 상용특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일 삼성 제품의 수입금지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보호무역주의자 낙인과 아울러 표준특허 체계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폭넓은 공유를 목표로 한 표준특허는 인류의 기술 진보에 이바지했다. 특히 산업이 가야할 방향을 정함으로써 신규 산업 창출과 발전에 큰 힘이 됐다. 그런데 이 표준특허보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독점한 상용특허의 권리만 폭넓게 인정을 받는다면 어느 누가 표준특허에 열정을 쏟겠는가. 표준특허 체계가 무너지면 미국 기술 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애플만 해도 아이팟부터 아이폰까지 표준특허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기업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자국 내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면 이로 인한 대외적 손실과 이미지 타격을 감수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