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땀흘려 개발한 대가(代價) 치러져야 개발 대가(大家)의 꿈도 자란다

직무발명?개발자 보상체계 개선, 발등에 불

#한때 전자제품 대기업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정모 교수는 지난해 자신이 개발한 동영상 압축 표준 `MPEG` 덕분에 회사가 올린 625억원의 수익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 출원을 위해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핑계로 오히려 회사 내에서는 당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정씨였다. 소송 제기는 쉽지 않았다. 사건을 맡아주는 변호사를 찾기 힘들었고, 혹시라도 찍히면 제자들이 취업할 때 불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2부는 지난 연말 `회사는 정씨에게 직무발명 보상금 60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불복해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슈분석]땀흘려 개발한 대가(代價) 치러져야 개발 대가(大家)의 꿈도 자란다

#조모 씨는 자판 입력 방식에 관한 특허를 개발해 국내 휴대폰 제조사에 제안했다. 이 방식을 충분히 검토했던 S사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왔고, 얼마 후 유사 특허가 자신이 제안했던 이 회사 명의로 먼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허 침해에 대한 배상액 90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8년간 공방 끝에 항소심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입력 방식 특허는 결국 지난 2011년 국가 표준이 됐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중1~고2 학생 62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희망직업 순위는 초등교사, 의사, 공무원 순이다. 지난 2001년 `톱10`에 들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아예 20위권 밖으로 밀렸다. 과학자, 엔지니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청소년 희망 직업 상위권은 안정적인 직업과 운동선수, 연예인 등이 채웠다. 같은 기간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말도 새로 생겼다. 우수 인재가 이공계를 피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 개발자 키우지 않는 기업 문화

정 교수는 “회사에 근무할 당시만 해도 기술 개발에 대한 보상은 따로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며 “기술을 개발하면 회사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데 개발자는 이에 대한 수익을 전혀 공유하지 못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봤다”며 소 제기 취지를 설명했다.

두 사례 외에도 특허권과 관련한 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은 매년 있어왔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특허 소송은 더욱 늘었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제기된 소송은 75건으로, 1976년부터 2006년까지 제기된 총 79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뛰어난 기술력과 특허를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달리 발명한 특허에 관해 수익을 얻으려면 장기간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인적·물적 부담이 따라야 한다는 방증이다.

과거 소송이 드물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회사 재직 중에는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적극적인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제기한 소송도 1991년부터 1996년 재직시에 출원했던 특허에 관한 것이다.

◇재주는 곰이, 소유권은 기업이

산학 연구 과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이나 대학원이 산학연구과제를 수행하면 기술 개발에 대한 소유권은 기업에 이전되는 것으로 주로 계약이 체결된다. 대학은 연구비만 지원 받는데 그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술 가치를 협상해 경상 로열티나 수익금의 일부를 공유한다.

장기술 연세대 산학협력단 연구지원팀장은 “보통 연구실과 기업의 계약에 따라 기술 소유권이 정해지는데 기업이 갖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대학이 기술 소유권을 갖는 국책 과제와 비교된다. 국책 과제는 산학협력단이 특허를 관리하면서 60~80% 내외에서 수익금을 개발자에게 돌려준다. 산학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공과대학 교수는 “대학원생들을 취업시켜야 하고 앞으로 연구 과제를 또 따와야 하는 상황에서 보상액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생색보다 실질적 보상 필요

특허 출원이나 발명에 대한 보상 제도는 점점 개선되는 추세다. 기업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은 지난 2004년 42.3%에서 지난 2010년 74.2%로 높아졌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도 각각 38.2%, 44.3%로 2004년 15.1%, 26.9%보다는 두배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공공 연구기관의 83.1%보다는 적다.

문제는 보상금 액수다. 산업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발명 제안 보상금은 해외 출원의 경우 중소기업은 건당 평균 49만8000원, 벤처기업은 93만2000원, 대기업은 28만7000원에 불과하다. 최근 삼성전자 직원 안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900억원대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안씨의 기여분을 1000만원만 인정한 사례도 연구자 사이에서는 개발자 공헌도를 낮게 책정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기업의 발명자에 대한 인식은 최근 이슈로 불거진 삼성기술육성재단 설립 건에서도 드러난다. 삼성 측은 지원을 받아 개발한 기술에 대해 무상통상실시권을 주장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불가 입장을 표하자 소송제한 규정을 다시 내걸었다. 개발한 기술에 대해 기업이 유사 특허를 사용하더라도 소송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무상통상실시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연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연구 과제를 수행해 특허를 출원하고 사업화 수익이 나더라도 발명자가 보상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런 처우에 실망해 대학원에 다니다가도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옮기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직무발명 보상 제도를 도입해 연구 성과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예로 삼성전자는 특허 출원 건수에 따라 적게는 50만원을 지급하고 수익이 발생할 때는 기여율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실제로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 측에서는 금전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에 난색을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출원 등 관리 비용으로 매년 2000억~2500억원을 지출하는 등 각종 리스크와 비용을 부담하는 회사의 공헌도도 고려돼야 한다”며 “적절한 보상은 이뤄져야 하나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면 R&D 전반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 될 것”이라고 반론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