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는 사람은 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강동주 바이오넷 대표는 글로벌ICT CEO 수상 소감을 담담히 밝혔다. 20여년을 의료기기라는 한 우물을 파 온 강 대표로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인 듯 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규제가 많은 산업이기 때문에 인증 하나를 통과하는 데만 수년씩 걸리는 일은 흔하다. 무엇보다 바이오넷은 그가 1999년에 창업해 지금까지 이끌어오는 회사이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
바이오넷은 생체신호((Bio-Signal)감지전문기업이다. 주로 환자감시장치(Patient Monitor), 심전계(ECG), 태아감시장치(Fetal Monitor), 휴대형초음파 등을 제조, 판매한다. 이 회사의 환자감시장치는 다채널 파라미터, 실시간 진단기능 지원 및 다양한 중환자를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 검출 성능을 지원한다. 또 심전계로 세계 최초 무선환자모듈(Wireless Patient Module)을 적용한 최첨단 심전계 `CardioXP`를 출시했다. 정확한 FHR Detecting 기술, CTG Interpretation 기술을 기반으로 한 태아감시장치 `FetalXP`도 개발했다.
바이오넷은 독일, 북미, 남미에 해외지사를 두고 있으며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의료기기 시장인 중국과 일본 진출도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다. 강 대표는 “유럽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에 믿을만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며 “전통적 의료기기에서 한발 나아가 원격진단이나 진료 등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한 제품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신감을 비쳤다.
의료기기 분야는 필립스, 지멘스 등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바이오넷도 연 매출의 20% 상당을 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강 대표는 “제조업은 제품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의료기기 분야는 원천기술 확보는 어려워도 사업 지속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기 때문에 투자를 계속 해왔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첫 직장이었던 대우정보기술을 시작으로 의료기술에 IT를 접목할 수 있는 사업을 계속 해왔다. 그는 SI(System Integration)산업은 남의 기술을 가지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면, 의료기기산업은 원천기술도 많고 개발할 여지도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강 대표가 본격적으로 의료기기 산업에 눈을 뜬 것은 대학원 시절 프로젝트로 만난 메디슨과의 인연이다. 그는 메디슨의 초음파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생체신호사업부를 맡아 이끌게 됐다. 당시 메디슨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일종인 `소사장제`를 운영했다. 바이오시스를 창업해 3년만에 상장까지 시켰다.
강 대표는 메디슨에서 창업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메디슨은 사내 인큐베이팅을 통한 도전이나 창업이 수월하도록 인프라를 제공했다”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사내에서 먼저 개척자를 찾고 그런 분위기를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하기 어려운 규격획득, 해외인증획득, 마케팅 등 다양한 지원이 사내는 물론 자회사 및 협력사와 공유했다. “메디슨의 자원을 가지고 `프리라이딩`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메디슨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바이오넷도 힘든 홀로서기를 겪어야 했다. 2002년 초반은 강 대표와 직원들의 단합이 없었다면 극복하기 어려웠던 시기다. 그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으로 상품화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강 대표가 어려운 시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기업인으로부터 배운 경험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메디슨의 이민화 전 대표(현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KAIST 교수)에게 큰 그림을 그리며 전략을 세우는 법을 배웠다. 또 세인전자 최태영 전 대표로부터는 시야를 좁히고 조직역량을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전자가 미래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디테일에 강했던 기업으로 사업의 모범이 됐다”고 말했다.
바이오넷은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2006년 이후 2011년까지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연평균 7.9% 성장했다. 2017년에는 4344억달러(한화 약 484조7904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IT 의료 융복합산업의 육성, 인구 고령화, 치료에서 예방의학으로의 보건의료 패러다임 전환이 예상된다.
바이오넷은 국내 최고의 임상기술을 통해 생체신호진단기기를 개발했다. 나아가 각종 국제규격 인증을 통해 제품 성능이 입증된 환자감시장치(BM5, BM7), 심전계(CardioXP, Cardio7), 태아감시장치(FetalXP) 및 휴대용초음파진단기기(MU1), 의약품주입펌프기(TCI/Syringe Pump) 등 핵심 제품을 갖췄다. 세계 80여개국 100여개 대리점·딜러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통한 지속적 성장을 내다봤다. 이는 국내 바이오 시그널 기업 중 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글로벌 주요 거점의 경우에는 현지법인, 지사 또는 대표처 설립을 통한 현지진출을 꾀하고 각종 전시회 참석을 통한 유망 대리점, 딜러를 발굴한 덕분이다.
특히 강 대표가 더 큰 가능성을 내다보는 것은 원격치료사업이다. 그는 “아직은 킬러 앱이 없고 규제 때문에 활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 헬스케어 기기 수준이 아니라 전문의료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원격치료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 대표는 서두르지 않고 “의료기기는 무엇보다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의료기술에 IT를 접목해야지 IT에 의료기술을 접붙이는 수준은 안 된다”고 재차 말했다.
강 대표는 세계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업의 기반이 되는 한국시장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의료기기는 개별적 역량은 좋은데,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는 취약해 가격을 낮추면서 소모전을 치루는 경우가 많다”며 “동종 업계에서 영업망이나 인력을 빼앗아가는 등 내부의 출혈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느낀 애로사항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은 시스템을 갖춰 만들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연구개발이나 기술은 대기업 못 지 않은 데, 사업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힘듭니다. 제품도 개발해야 하고, 경험 많은 인력이 부족한 이중고를 겪는 일이 많습니다.” 결국 중소기업은 중복 투자를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대기업보다 비용을 많이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종 산업 간 연합이나 먼저 진출한 대기업이 자신들의 인프라를 개방하고 협력하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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