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벤처기업협회가 중소벤처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중 투자유치를 희망하느냐고 설문했더니 47.7%가 `그렇다`고 답했다. 벤처기업의 투자유치 수요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조사엔 벤처 1000억클럽 기업 416곳 가운데 창업 이후 투자유치를 받아 본 기업이 4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업력이 짧을수록 투자유치 경험이 많았다. 벤처 투자가 기업 초기 성장에 중요한 마중물임을 시사한다.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도 2002년 6277억원에서 2007년 9917억원, 2012년 1조2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수혜기업은 매년 600곳이다. 하지만 그 회수 비중은 기업공개(IPO)가 무려 97.7%에 이른다. 기업 인수합병(M&A)은 2.3%에 그쳤다. M&A 비중이 57.9%에 이르는 미국과 대조된다.
자금회수방법은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IPO에만 쏠리면 생태계가 왜곡되고, 심지어 투자받은 벤처기업조차 자금난을 겪기도 한다. 창업 벤처기업이 IPO까지는 상당한 검증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벤처기업이 IPO에 이르기 전에 자금난을 겪어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는다. 반면에 M&A는 IPO보다 짧은 시간 안에 필요로 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기업도 M&A를 활용하면 자금회수 기간이 짧아 후속 투자할 여력을 확보한다.
M&A는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 뿐만 아니라 자금난을 해소할 비상구이기도 하다. 미국 애플·구글·페이스북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활발한 M&A 덕분이다. 대기업은 창업기업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흡수하고 창업기업은 든든한 자금을 얻어 새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를 `문어발식 경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법으로 인식해야 한다. 벤처 생태계 선순환을 이룰 실질적인 M&A 활성화 지원이 필요하다. 대기업 인수 벤처기업의 계열사 편입 유예와 같은 정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