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전문회사 파이라이팅은 종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콘덴서를 개발했다. 그동안 조명은 빛이 주파수에 따라 깜빡거리는 `플리커` 현상을 없애기 위해 전해콘덴서를 써 왔는데, 이 콘덴서를 코일형 기계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처음 이 기술을 가지고 투자 심사를 받으러 갔더니 전자공학 박사 출신 심사역이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억기 파이라이팅 대표는 조명 업계의 통념을 깼다. 조명에 전해콘덴서를 쓰는 건 전자공학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 발상의 전환은 실제 제품으로 구현돼 최근 생산을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로 파이라이팅의 조명을 비추면 플리커 현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는 “`플리커 제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파이컴(현 솔브레인이엔지)을 창업해 1000억원대 코스닥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했던 이억기씨가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지난 2009년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정리한 뒤 업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었다.
이 대표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는 LED 조명과 가스버너시스템이다. 요양에만 신경 쓴 지 2년째, 몸이 완쾌되면서 산업 현장에 대한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철도 등 전력 계통 전문가를 수소문 해 기계식 콘덴서 개발을 맡겼다. 3년 만에 `플리커 제로` 전력공급장치(SMPS)가 개발됐다.
이 대표의 완벽주의는 지난 2000년 파이컴에서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테스트용 프로브카드(Probe Card)를 개발하면서부터다. 프로브카드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그려진 수만개 칩(다이) 내부 불량을 측정하는 장비다. 한 개 카드에 붙은 수만개 팁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테스트 신뢰성을 확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난 2004년 미국 폼팩터와 60개월동안 특허 공방을 벌여 전부 승소를 이끌어낸 것도 그였다.
그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며 “LED 조명용 SMPS는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완벽을 목표로 해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봤다.
인생 이모작에 그가 붙인 이름은 `농부의 미소`다. LED 조명과 난방 기구를 이용하면 농작물 생산성을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이른바 농업 IT 사업을 위해 파이라이팅과 GBM을 설립했다. “최고의 기술을 갖추면 그건 인간을 위해서 쓰인다”는 그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청년 창업가 못지않게 기술 개발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