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는 1993년 9500만달러(약 1056억원)에 `크레센도`를 인수했다. 지난해 크레센도 제품은 시스코에 100억달러(약 11조1200억원)를 벌어줬다. 순익까지 높았다. 이러한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시스코가 인수합병(M&A) 세계 `미다스의 손`이란 평가는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15%의 M&A 시장 축소가 일어난 지난해 시스코는 사상 최대 규모의 돈을 썼다. 한 해 동안 14건의 인수로 80억달러(약 8조9000억원) 규모 거래를 성사시켰다. `포식성`을 자랑해온 시스코에게 M&A는 지금껏 성장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1983년 단 2명으로 시작한 시스코는 20년 후인 2002년 3만5000명 임직원의 189억달러(약 21조원) 규모 회사로 자랐고 지난해 회계연도 461억달러(약 51조원) 매출을 냈다.
설립 이후 지금껏 인수한 기업만 166개. 팀 메리필드 시스코 인터넷비즈니스솔루션그룹(IBSG) 이사는 “연습이 완벽함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시스코는 인수 전략을 통해 성공적으로 돈을 버는 비법을 가졌다”고 말했다. 시스코의 인수 성공률은 통계상 일반 기업의 서너 배에 달한다.
◇M&A는 하나의 `비즈니스 방식`=메리필드 이사는 “25%의 M&A만이 희망하는 비즈니스 목표를 이루게 해준다는 확률이 있다”며 “시스코는 2000년대 초까지 수십 번의 인수를 진행하면서 M&A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방편(a way of doing business)`이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M&A 전략은 사전 준비가 반이다. 시장·기술·지역별 전문가로 이뤄진 `기업개발(Corporate Development)` 팀이 주축이다. 해당 지역·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한 전문가 조직으로 이스라엘, 인도, 중국, 체코 등 세계 주요 타깃 지역에 걸쳐 있는 글로벌 팀이다. 투자부터 파트너십, 인수까지 직접 관할한다. 힐튼 로만스키 시스코 기업개발 총괄 수석 부사장은 “회사의 우선순위와 변화 전략에 맞춰 소규모 거래에서 대규모 합병까지 모두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M&A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전략(Strategy), 준비(Readiness), 그리고 실행(Action) 수순이다. 전략 단계에서 해당 거래가 시스코의 전략과 사업 우선순위에 부합하는지 점검한다. 준비 단계에선 합병을 통해 통합을 이뤄낼 만한 경영진을 고려한다. 실행 단계에서는 인수를 통해 시장에서 노릴 수 있는 기회 요소와 적절한 시기 등을 결정한다.
M&A 대상 물색은 크게 세 카테고리에서 이뤄진다. 시장에서 성장세를 높여주거나 영역을 확장시켜 주는 경우, 그리고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다. 최소 수십억 달러 규모 시장 잠재성이 있는 분야에서 대상을 찾는다.
예컨대 시스코가 인수한 스타렌트(Starent)는 모바일 시장에서 초기 성장에 큰 도움을 준 사례로 시장 선두 자리를 안겨줬다. 에어스페이스와 소스파이어는 기업용 모바일 오피스와 보안 시장에서 더욱 시장 확대를 가능케 한 대표적 사례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한 사례는 1993년에 인수한 크레센도다. 단순히 라우터 기업에서 독보적인 네트워크 기업으로 발돋움 하게 했다.
피인수 기업은 시스코에 △좋은 인재와 기술 △성숙한 제품과 솔루션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과 사업 모델 등 다른 형태의 자산을 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혁신을 일으킬 인재의 유무다. 강력한 비즈니스 사례를 일궈낸 기업, 시스코와 사업·기술 비전이 일치하는 경우에 추진하는 인수도 있다. 직접 투자할 때는 시스코의 사업·제품 그룹과의 전략적인 연관성과 재정적인 건전함을 반드시 동시에 따진다. 독립적으로 돈을 벌어줄 수 있을 만큼의 튼튼함을 요건으로 삼는다. 망해가는 피인수 기업을 선정하는 대부분 기업과 매우 다른 점이다.
시스코는 통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 문화`도 중요한 조건으로 본다. 인수 대상 기업이 성공적 비즈니스를 위한 문화적 자양분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도 유력한 인수 대상으로 꼽는다. 시스코가 최근 가장 우선으로 삼는 4가지 M&A 분야는 △모바일 △데이터센터/클라우드 △무선·네트워크 △보안 영역이다.
◇시스템부터 문화적 통합까지=시스코는 초창기 수십 건의 M&A를 경험한 이후 그때그때 달라지는 임시방편 전략이 아닌 표준화된 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리필드 이사는 “M&A를 통해 비즈니스 효용을 얻으려면 반드시 재사용 할 수 있고(Repeatable), 측정가능하며(Measurable), 지속적으로 개선되는(Constantly improving) 거버넌스(체계)와 프로세스에 대한 기초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두 기업의 사업 영역과 IT체계를 가능한 빠르게 통합한다.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도 중요하다. 피인수 기업은 `시스코 온 시스코(Cisco on Cisco)` 철학에 따라 시스템을 표준화한다. 시스코와 서로 다른 전화 시스템과 다른 브랜드 라우터를 쓰지 않는다. 가능한 언제 어디서든 하나의 기술로 통일한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생산성을 높인다.
IT를 포함해 인적자원(HR)과 생산의 통합을 우선적으로 진행한다. 인수가 이뤄지고 난 즉시 피인수 기업 직원들이 시스코의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거나 명함을 받고, 건강 복지를 적용 받거나 보너스 혜택도 주어진다. 통합 절차를 규정한 `일일 매뉴얼`에 따라 일 단위로 관리하면서 불필요한 시간 소요를 줄인다.
예컨대 모든 피인수 기업의 자재명세서(BOM)도 시스코의 자재소요계획(MRP) 데이터베이스에 최대한 빨리 통합시킨다. 인수된 그날 부터 자원의 통합을 위한 시스템적 지원이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것이다. 시스코의 수요예측 시스템과 신제품 출시 절차 등을 따르게 해 빠른 프로세스 통합 효과를 노린다.
두 기업의 시너지를 높일 비즈니스 개발은 인수 이전 초기 실사(Due Deligence) 단계부터 이뤄진다. 또 이같은 시스코의 M&A 전략은 시스코가 성장의 요소로 삼는 `만들고(Build), 사고(Buy), 협업하는(Partner)` 큰 틀의 성장 방법론 중 하나다.
시스코가 최근 주력하는 4가지 M&A 분야와 주요 기업
시스코의 주요 연혁 (출처:시스코)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