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촉진법에 발목 잡힌 `석유화학 강국`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국회서 발목 잡히며 2조3000억원의 석유화학 설비투자가 차질을 빚고 있다. 한국 측 합작파트너가 대기업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발의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27일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촉구 정책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려면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 100%를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대기업집단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로 인해 그동안 지주회사 손자회사는 외자유치, 벤처투자 활성화 및 중소기업과 협력 등에 필수적인 다양한 형태의 제휴나 지분투자, 합작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해 투자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도모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현재 울산과 여수 지역에 국내외 기업이 합작한 2조3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설비투자가 증손회사 보유규제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 GS칼텍스와 쇼와쉘, 타이요오일의 연산 100만톤 규모 파라자일렌 여수공장 설립투자(총 1조원, 외투 5000억원), SK종합화학과 JX NOE의 연산 100만톤 파라자일렌 울산공장 설립투자(총 9600억원, 외투 4800억원), SK루브리컨츠와 JX NOE의 제3윤활기유 울산공장 설립투자(총 3100억원, 외투 870원)가 이에 해당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5월 외국인 합작투자의 경우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을 50%만 가져도 증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여상규 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란이 지속되면서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상의는 투자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상의는 건의문을 통해 “투자는 시기가 중요하며, 지금 규제에 묶여있는 합작투자는 석유화학 관련 설비투자로 생산품의 아시아 지역 수요가 급증해 증설이 시급한 실정”이라며 “적기의 투자시기를 놓치면 중국 등에 사업기회를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합작투자를 통한 공장증설을 추진하는 석유화학물질 `파라자일렌(PX)`은 섬유제품의 중간원료로 아시아 섬유산업 발전에 힘입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상의는 “석유화학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국내외 기업 간 합작이 불가피하다”며 “투자가 무산되면 석유화학 허브로서 울산과 여수의 입지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의문은 이어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을 투자활성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1970년대 20% 이상에서 2000년대 3.4%까지 떨어졌으며, 최근 13개월 연속 감소했다. 외국인투자 유입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 유치규모도 OECD 34개국 중 25위에 머물고 있다.

건의문은 “지주회사 중 중견·중소 지주회사가 많은 만큼 규제완화는 향후 중견·중소 지주회사 육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년 9월 기준으로 103개 일반 지주회사 중 중견·중소 지주회사가 75개사에 달하며, 손자회사·증손회사를 보유한 중견·중소 지주회사도 58개에 이른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