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IT 발전방향은]"H-ICT(의료+ICT) 우리나라 유망하다…융합 가로막는 환경 없애야"

위장의 정맥류 출혈이 발생한 간병증 환자가 있다. 내시경으로 관찰하며 지혈 약물을 빠르게 주입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이 때 국내 대부분 병원에서 쓰이는 내시경과 약물주입도관은 일본 제품이다. 내시경 기록 처리 장치인 모니터와 녹화기기, 프린터 역시 일본 제품이다. 영상을 처리하는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는 미국 제품, 내시경 주입용 약물은 유럽산이다.

27일 창조경제포럼 8월 모임 주제발표자로 나선 송시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이 수술 현장에서 직접 겪는 경험담이다. 송 교수는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의 의료 산업 현장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라며 “모니터나 녹화기기 같은 장비는 국산 경쟁력이 뛰어나지만 장비를 패키지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 일본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사기·찜질기 팔고 MRI 수입한다”

송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기기 수출입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1등 기업이 글로벌 톱 기업 매출 대비 70% 이상 따라갔을만큼 강력한 제조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료 산업에는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기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단 의료기기 뿐만이 아니라 의료산업의 다른 두 축인 서비스와 신약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융합이 이뤄지지 않은 연구개발 환경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의료분야와 타 분야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이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미국은 하버드대를 비롯한 13개 학교의 연구실에서 융합연구의 틀을 구축하고 2006년부터 의료산업과 타 산업분야 융합 모임을 직접 지원해 66개의 관련 센터를 유지하고 있다. 송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10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융합 경험부족·산업화 전문성 취약

송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체험한 융합을 가로막는 문제점으로 △경험부족 △산업화 전문기능 취약 △의료계(대학) 평가 관행 등을 꼽았다. 의료산업이 타 분야와 함께 융합해 본 경험이 없고 기술과 사업모델의 옥석을 가려내는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현장에 없는데다, 대학병원 등 의학자들은 사업화보다는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지난 2006~2010년 진행된 의료기기 연구개발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송 교수는 “융합의 실패로 목적지향적 연구가 아닌,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작은 내수시장과 지나치게 높은 의사 1인당 환자 수 등도 산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의료-ICT 융합한 `H-ICT` 가능성 높다

송 교수는 창조경제의 중요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인 `의료ICT` 분야만큼은 우리나라가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와 ICT 융합 모델을 `H-ICT`로 명명하며 “IT기술로 의료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시장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아직 시장지배 세력이 미약해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첨단에 익숙한 국민성향, 우수한 인력 등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H-ICT` 산업이 융합해야 할 분야로는 스마트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을 꼽았다. 스마트 모바일은 시공 제약을 극복한 실시간 의료서비스로 우리나라 사람의 의료요구 조건과 일치한다. 클라우드 컴퓨팅과의 융합은 경제성과 유연성, 안정성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빅데이터는 이미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데이터 베이스를 다른 산업과 융합해 차별화된 서비스로 재창출하는 것이다.

송 교수는 “H-ICT 실현을 위해서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 수립과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 수립, 정부와 의료계, 기업의 이상적 역할 분담 체계 구축 등이 숙제”라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