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동아시아 '푸른하늘' 을 한국이 제압하다

[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동아시아 '푸른하늘' 을 한국이 제압하다
[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동아시아 '푸른하늘' 을 한국이 제압하다

필리핀 마닐라를 거쳐 도착한 조그만 상업도시 민다나오 섬. 이곳은 이슬람 반군 세력이 장악한 반정부 세력 중심이기도 하다. 아직도 곳곳에 폭탄 테러의 흔적이 남아있고 빈부 격차가 극심해 비포장도로를 값비싼 외제차가 줄지어 달리는 혼돈의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 한국 항공IT를 결합한 국제공항이 들어섰다. 또 국내 항법 지원 설비 사업이 최초로 시도되고 있다. 공항 입구에 들어서자 한진중공업 현장소장과 필리핀 공항장이 나란히 기자를 맞이했다.

라귄딩간 공항은 민다나오 섬 북부 항공수요 급증으로 포화상태인 카가얀 디오로 공항을 폐쇄하고 만든 지역 거점 공항이다. 국내 자체 설계와 시공으로 공항 개발에 참여한 사례는 있지만 해외에서 우리 기업이 설계와 감리용역을 맡아 모든 사업을 총괄한 것은 라귄딩간이 최초다.

필리핀은 라귄딩간 공항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을 신청해왔다. 이 지역은 관광·농업 등 지역 경제 성장으로 여객과 화물 운송 수요가 급증했지만 대부분 정기노선이 없는 소규모 공항만 운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다나오 지역은 이슬람 반군 활동과 수도권 집중화 등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상태다.

기존 공항 수용 능력 한계와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사회 인프라 시설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연간 50만명 이용 규모의 국내선급 신공항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 필리핀 정부는 2000년 12월 항공 수요와 항공 정책을 재검토했다. 민다나오 북부지역 항공수요를 충당하고 경제 인프라 확충이 절실한 과제라고 판단해 컨테이너 부두설치와 공항개발을 통한 투자유치 일환으로 라귄딩간 공항 구축에 나섰다.

◇7000개의 섬 필리핀, 항공 동아시아 벨트 요람

라권딩간 공항 구축 사업은 한국에 있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부품소재와 스마트폰 강국으로 해외에 알려진 대한민국이지만 항공 산업 분야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번 공항 구축사업은 EDCF라는 강력한 원조 아래 은행과 국내 기업이 뭉쳐 항법지원 설비까지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김종수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장소장은 “한국의 항공 기술은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고 대형 프로젝트가 많아 수주 자체를 따내는 것도 힘든 일”이라며 “유럽 파크에어 등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 항공구축과 설비 사업까지 장악하고 있고 기존 공항들도 장비 교체와 관련한 리스 때문에 새로운 업체로 바꾸는 걸 꺼려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라귄딩간 공항에 한진중공업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때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EDCF를 지원한 수출입은행이 사업자인 필리핀 교통통신부항공국(DOTC)에 한국 기업을 참여시켜 달라고 설득했고, 결국 한진중공업과 감리를 맡은 유신 코퍼레이션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

이런 상황을 다른 해외 다국적 기업이 가만히 둘리 만무하다. 독일, 일본 등 유수의 항공 설비 기업이 필리핀 정부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다. 경험이 아주 없는 한국 기업에 공항 구축 사업을 맡기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공항이 취항하면 이에 필요한 장비 공급 수익이 최소 수십 년간 지속되기 때문에 독점 기업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필리핀 정부는 라귄딩간 공항 구축사업을 한국이 아닌 유럽계 자본으로 구축하겠다고 입장을 변경했다. EDCF 원조은행인 수출입은행과 한진중공업은 큰 위기에 봉착했지만 밤낮으로 필리핀 정보를 설득했다. 현지기업보다 더욱 발 빠르게 민다나오의 도로와 항만 무상 유지보수에 나서는 등 감동 전략을 택했다. 천신만고 끝에 최종 사업자는 한진중공업 컨소시엄으로 원상복귀. 토종 항공 설비가 해외에 깔리는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2008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간 라귄딩간 국제공항은 지난 6월 13일 첫 취항식을 가졌다. 해외 유수의 국제선이 기술로 설계하고 완공된 공항을 통한다. 필리핀 정부는 라귄딩간 공항 개통으로 유명 관광지인 민다나오 섬 북부 해안지역과 미지의 섬 `카미겐(Camiguin)섬 중심으로 관광 사업을 활성화하는 복안을 갖고 있다.

민다나오가 테러발생 지역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필리핀 정부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역이다. 라귄딩간 공항 사업으로 필리핀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다

한진중공업 컨소시엄이 국내 첫 순수 국산기술로 공항을 건설했다. 하지만 항공분야는 단순 공항설비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교통 인프라를 총괄하는 `항법 지원 설비`가 핵심이다. 라귄딩간 공항 건설 사업에 토종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항법지원 설비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또한 최초다.

활주로와 관제탑, 터미널 등 국제공항 시설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인천공항에 적용한 IT로 새롭게 재현하는 시도다. 사업에는 기상장비는 물론이고 무선 통신장비. 자동 이착륙 장치 등 항해 안전시설에 한국 IT를 최초 적용하는 의미가 있다.

5곳의 국내 기업이 역할을 분담해 `서광종합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매립 등 기구 제작업체인 서광과 장비공급 업체 유양산전, 한국공항공사 등이 참여했다. 2014년 6월을 목표로 토종 항법지원 설비 작업이 라귄딩간 공항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운행이 중단되는 야간에만 작업을 하고 있어 공사 진행이 더디다.

이 사업은 국내기업이 필리핀 공항 개발 사업에 진출한 최초의 사례다. 필리핀이 약 7000여개 섬으로 이뤄져 항공교통 수단 의존도가 매우 높다. 공항과 항법지원 설비까지 국산화를 일궈낸다면 향후 필리핀 후속 사업에 국내 기업의 참여기회 또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리핀 팔라완 소재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도 우리나라 기업이 개선 공사를 할 예정이다. 한국은 공항 설비 경험을 쌓아 85개에 이르는 공항을 보유한 섬나라 필리핀 항공 인프라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필리핀이 한국 항공 산업의 교두보가 되는 것이다.

항법지원 설비 시장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불린다. 교체 수요가 많고 한 번 거래가 되면 업체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 생태계를 갖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 기업의 동남아시장 항공 산업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한국도 항법지원 설비 관련 기술개발로 설비 대부분을 국산화했다. 하지만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국제 인지도 부족으로 수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라귄딩간 공항 구축 사업으로 계기착륙과 관제통신설비 등 한국산 항법지원 설비의 실험대로 판단하고 있다.

항공 산업은 고부가가치 유발 사업으로 한국에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한진중공업 등 일부 국내 기업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라귄딩간 공항에 토종 항공기술까지 깔릴 경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푸른 하늘을 한국이 제압할 날이 머지않았다.

민다나오(필리핀)=


[표] 라귄딩간 공항 건설사업 개요 자료-필리핀 교통통신부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