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무실에서 사용해 봤을 접착식 메모지 `포스트잇`의 탄생 배경은 매우 흥미롭다. 1970년 스리엠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는 초강력 접착제 개발을 목표로 하는 연구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일반 접착제보다 접착력이 훨씬 약하면서 끈적거리지 않는 당시로서는 `별 쓸모없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이 내용을 사내 기술세미나에 보고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74년 동료인 아서 프라이가 `쓸모없는` 접착제 연구결과를 활용할 만한 획기적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스펜서의 접착제 기술로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서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실패로 끝난 줄 알았던 스펜서의 접착제 연구가 프라이에 의해 다시 진행됐고 1977년 마침내 포스트잇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비아그라도 비슷한 사례다. 미국 제약업체 파이저(Pfizer)가 협심증을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하던 중 협심증보다는 발기부전에 탁월한 효과를 발견하고 현재의 상품으로 발전시켰다.
만약 이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 국가 R&D사업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해당 연구책임자는 실패한 연구자라는 오명을 쓰고 참여제한 조치를 받아 더 이상 정부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또 연구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그대로 묻혔을 확률이 높다. 심하면 사용했던 연구비까지 반납해야 했을 수 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실패 부담이 큰 탓에 결과가 쉽게 예상되는 안전한 연구만을 수행한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2011년 국가 R&D과제 성공률은 98.1%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성실한 연구수행 시 실패에 대한 불이익을 감면하는 `성실수행인정 제도`를 마련했지만 기준과 평가방법 등이 부처마다 상이하고 일부과제에만 예외로 적용돼 연구자 보호효과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실패를 성공의 자산으로 삼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8월 `연구개발 재도전 기회 제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확정, 발표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 전반에 성실한 실패가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적 평가 제도를 구축한 것이다. 성실히 수행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연구자에게는 참여제한, 연구비 환수 등 제재가 면제된다. 초기에 설정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연구과정에서 도출된 성과가 후속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새로운 가능성이 인정되면 다시 연구 기회를 부여한다. 또 실패를 극복하고 재도전해 성과를 창출한 연구자를 포상하는 등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조성할 것이다.
창조경제는 과거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모방·추격형 성장을 창의·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 중심에 창의적·도전적 연구개발이 자리한다. 선도형 경제성장은 `전례답습적인 연구`로는 달성할 수 없다. 새롭고 기발하며 때로는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연구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이 안전장치이자 촉매제로 작용해 보다 많은 과학두뇌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적 연구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실패 경험이 창조적 자산으로 이어지는 연구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가 바라는 창조경제가 실현되고 제2, 제3의 포스트잇도 탄생할 수 있다.
백기훈 미래창조과학부 성과평가국장 khpaek@msi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