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재부 월권과 행정 위기

[데스크라인]기재부 월권과 행정 위기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 한 과로 기획재정부에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당일 아침 보도된 문화부 규제 관련 기업 피해 우려 수치의 진위와 앞뒤 사정을 캐묻는 내용이었다. 문화부 공무원은 해당 발언자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경위를 파악해 `보고` 같은 답변을 기재부에 해줬다. 그래도 밀려드는 어리둥절함을 어쩔 수 없었다.

기재부의 `왕 부처` 행세가 도를 넘었다.

무소불위의 예산권을 쥐고 안 그래도 절대적 `공갑(공무원들의 갑)`이었지만, 최근 세수 부족에 복지예산 고갈까지 기정사실화하면서 기재부의 목줄기는 갈수록 뻣뻣해지고 있다.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정책을 펴고, 예산을 끌어와 사업을 해야 하는 실무 부처들로선 해당 사업의 실행과 결과 챙기기보다 기재부 눈치를 먼저 살펴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사업이 잘 될 리 만무하다.

정부 5년의 과오가 집권 1~2년차에 대부분 판가름난다고 볼 때, 1년 가까이를 허송세월 한 것도 이 같은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총리로 격상됐다.

올초 신설 부처와 기존 부처 업무 분장을 구체화하면서 `0순위 과제`인 경제살리기를 위해 실물·거시·통계 정책을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 권한을 부총리에게 지웠다. 산업과 경제 현장에 온기 같은 돈이 돌게 하기 위해 특단의 선택이 필요했던 차에 전 정부에서 없앤 부총리를 부활하는 것이 필요했다. 여기까지는 별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 예산권과 인원, 대통령 공약 실행 계획에 기초한 각 부처 사업 등에 일일이 간여했고, 필요이상의 간섭과 통제력을 넣었다. 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하면서는 사업 성과와 기업 지원과 같은 맡겨진 역할 평가는 도외시한 채 줄 세우기에 가까운 평점을 매겨 말썽을 빚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들이 명확히 해결했어야할 세수부족분 채우기 과제는 이른바 `근로소득자 과다 징수`란 국민적 역풍을 맞고 좌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젠 남은 예산을 아예 풀지 말고, 예산 집행을 중단하라고 각 부처에 하달했다. 이 예산은 어쩌면 한 중소기업의 `생명줄` 같은 운전 자금일 수도 있고, 개발 완료를 목전에 둔 R&D 자금의 일부일 수도 있다. 기재부는 이런 것까지 살피라는 것이 작년 보다 10조원 이상 세금이 덜 걷힌 판국에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라고 귀를 닫는다.

산업 현장은 지금 극심한 불황과 수요 침체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벤처나 스타트업 육성을 목청껏 부르짖어도 창업은 어렵고, 살아남기는 더 어렵다.

경제의 `피`를 돌게 하는 것은 지금의 세수를 안정적으로 맞추는 것보다 수백, 수천 배는 값진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담당 공무원 자신은 감사에서 책임을 면할지 몰라도 `경제 총괄 부처`로서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남기게 될 것이다.

정부 시스템의 위기라 불리는 상황에서 기재부의 세수타령은 한가한 소리일 수밖에 없다. 부총리를 중심으로 시장과 산업현장을 돌아보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우선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