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란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하는 경제용어다. 자신이 보유한 현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 만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그것에 투자하기 위해 종잣돈을 모으고 심지어 대출까지 받는 게 인지상정이다.
지난 30년간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는 가장 매력적인 그것은 바로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재테크를 위한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금융역사를 되돌아보면 1998년 이전 통화량 증가율이 연 20%를 넘었다. 물론 더 오래전 연 40%를 넘었던 적도 있었으며 아예 60~70%를 넘었던 적도 있다. 이렇게 시장에 돈이 넘쳐나면 결국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고 실물 자산 가격이 들썩인다. 이른바 돈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풍부한 시장 유동성은 더 큰 미래가치가 보장되었던 부동산으로 몰려들었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성실하게 저축을 했던 월급쟁이만 바보가 됐다. 근검절약한 인내심 결과로 애써 모은 저축과 보험 상품의 만기 수령액은 몇 배나 올라버린 부동산 가치와 비교할 수도 없었고 시장 물가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해 버린 것이다.
몇 번의 사례를 경험하자 인플레이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결심한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부동산이 꿈틀대고 은행 대출 문턱이 낮아지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여긴 대부분의 서민은 서슴없이 부동산에 베팅을 했고 결국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과거 정부는 국민에게 비과세와 세금우대뿐 아니라 소득공제 혜택까지 제공해서 저축을 적극 장려하던 시기가 있었다. 저축의 날을 정해 저축 유공자에게 훈장과 표창을 수여하는 성대한 기념식을 베풀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저축이 절대 선(善)이었고 아껴서 차곡차곡 저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저축의 시대임에도 대세를 역행한 일부 소수는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전국의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물가상승(인플레이션)으로 시중 금리가 치솟았지만 저리 특혜를 받은 그들에게 대출이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아주 성공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번 셈이다. 레버리지는 `지렛대`라는 의미로 빚을 지렛대로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금융 투자법을 뜻한다.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과 정부 특혜라는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시장을 꿰뚫어 보는 그들의 정확한 눈과 빠른 판단을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투자 승패 분위기에 편승해서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을 정확하게 살펴보고 다가올 흐름을 예측하는 데 달려 있다. 끊임없는 돈의 흐름에 따라 자산의 가격은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의 흐름을 결정짓는 여러 변수 중 하나는 금리이며 또 하나는 시중의 통화량이다.
이제 그들의 본격적인 움직임에 앞서 한발 빠른 판단과 실행이 필요한 시기다. 부동산의 추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금융의 시대에 대한 관심도 잊지 말아야 한다.
빈자(貧者)는 지난 역사에서 이미 겪었던 실패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이다. 현자(賢者)는 지난 실패를 잊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부자(富者)는 미래를 준비한 현자들 가운데서 나온다.
이정걸 KB국민은행 WM사업부 재테크 전문위원 nvorkr@kbf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