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세계 유일 핵심기술이 세계를 지배한다

[전문가 기고]세계 유일 핵심기술이 세계를 지배한다

지난 8월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열린 특별한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 미국, 호주의 10개 기관이 함께 개발하고 있는 세계 최대급 차세대 광학망원경 `거대마젤란망원경(GMT)`에 쓸 세 번째 반사거울의 주물을 뜨는 행사였다. 이는 직경 8.4m짜리 반사거울 7개를 벌집 모양으로 붙여 직경 25m 천체망원경을 만드는 핵심 작업 중 일부다. 이 행사에는 GMT에 참여하는 10개 기관 기관장이 모두 참석했다.

반사 거울 하나를 완성하는데 1년 6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때마다 이런 행사를 갖는다. 주물 뜨는 게 얼마나 중요하기에 10개 기관장이 미국에서도 변방의 사막지역인 투손에 모두 모여 호들갑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행사의 내막을 알고 보면, 우리가 큰일을 앞두고 지내는 고사와 같은 심정으로 치러지는 중요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반사거울 크기는 8.4m다. 그것도 미국의 애리조나대학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학 내에 미국 국립광학천문대가 있을 정도로 애리조나 대학은 광학망원경 제작 분야의 세계적인 메카나 다름없다.

반사거울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8.4m 원형 틀에 유리 덩어리와 같은 투명한 원재료를 숙련된 기술자들이 고르게 쌓아 놓는다. 원형 틀을 섭씨 1165℃까지 서서히 가열하면서 회전시키면 유리덩어리가 녹으며 오목거울 형태가 만들어 진다. 앞면은 균일한 오목 면이고 뒷면은 경량화를 위해 벌집 모양으로 파낸 형태의 초기거울이다. 이를 상온으로 식히는 작업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무게가 무려 2톤이나 나가는 초기거울에 기포가 하나라도 생기면 안 되는, 무척 까다로운 공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물로 뜬 직경 8.4m짜리 초기거울 표면을 조금씩 깎아내고 측정하기를 수만 번 반복해야 비로소 머리카락 굵기 수준인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나노미터 정밀도의 매끈한 반사거울을 만들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반사 거울을 만드는 유리 덩어리 원재료를 일본 `오하라`라는 회사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리조나 대학과 오하라가 없다면 약 1조원이 드는 세계 최대급 망원경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근원적 의문에 과학으로 답하려는 아이디어와 열정은 이 두 기관이 가진 기술이 있어야만 구현된다. 이게 바로 히든챔피언 기술이다. 세계 유일의 독보적인 핵심기술이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이 기초과학의 대표격인 천문학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도 히든챔피언 기술이 있다. 우주를 네 가지 주파수로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제까지는 주파수별로 따로따로 관측하는 기술만 존재했다면, 10여년간의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사업을 통해 우주를 좀 더 신속하고 입체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독보적인 기술을 구현했다. 마치 1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다 4개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는 기술이다. 청진기로 병을 검진하다가 엑스선은 물론이고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동시에 검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국내 기술의 효용성과 독창성이 세계 천문학계에 소문이 나자 이웃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자국의 전파망원경에 이 기술을 심어 달라는 관심과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세계 전파망원경 수신기 분야를 석권할 날이 머지않았다. 창조경제를 통해 우리나라 출연연과 중소기업에서 이 같은 독보적인 기술이 많이 나와 대한민국이 세계의 히든챔피언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필호 한국천문연구원장 phpark@ka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