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명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심형래씨가 파산신청을 했다. 한 때 용가리·디워 등 나름 히트 작품을 내놓으면서 승승장구했던 인물이다. 무리한 투자가 화근이었다. 심 감독의 꿈은 할리우드 배우를 기용해 우리 제작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무산됐지만, 남긴 유산도 적지 않다. 심 감독의 영화는 취약한 스토리에도 한국 영화가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그래픽 기술을 선보였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심 감독 영화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작품성을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심 감독이 구상한 한국영화의 세계화 플랫폼을 봉 감독이 훨씬 더 세련되게 구현해 냈다고 볼 수 있다. 심 감독의 용가리와 디워의 DNA가 알게 모르게 이식돼 있는 셈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의 거목이었던 노키아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갔다. 한 때 오바마 폰으로 불렸던 블랙베리도 매각되면서 스마트폰 시장의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여전히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향후 중국 스마트폰이 부상할 것이란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중국 업체들이 내놓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갤럭시와 아이폰에 비하면 아직 조잡한 수준에 불과하다.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따라왔지만, 소프트웨어·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취약한 브랜드도 약점이다.
중국산 스마트폰은 심형래 감독의 영화 `용가리`와 많이 닮아 있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재능 있는 중국 사업가와 몽상가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산업은 더디지만 한 발짝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ZTE·화웨이뿐 아니라 샤오미·OPPO 등 로컬 스마트폰 업체들도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설국열차처럼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중국 스마트폰이 나올 때가 머지않은 것 같아 갑자기 섬뜩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대응전략을 고심해야 할 때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