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2)센서에서 동력을 찾자

노르웨이 팹리스 기업 포라이트는 독특한 제품을 개발했다. 반도체 공정을 활용해 자동초점(AF) 액추에이터용 소자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의 소형 카메라 렌즈에 쓰인다.

삼성전자는 렌즈의 상하 이동(스트로크) 거리차를 이용한 `보이스 코일 모터(VCM)` 방식을 사용하고, 애플은 압전 세라믹 소재를 이용한 `피에조` 방식을 쓴다. 포라이트는 이 두 방식을 혼합한 방식이다. 박막 유리와 하판 유리 사이에 폴리머를 삽입하고, 전력량에 따라 위의 박막유리 소재가 움직이면서 초점을 조절하는 구조다. VCM보다 얇게 만들 수 있고 AF 속도가 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반도체 공정을 이용하기 때문에 양산 비용도 싸다. 포라이트 창업자는 과거 듀폰, TI, 모토로라 등에서 실력을 쌓은 엔지니어들이다. 반도체·소재 기술을 접목한 제품을 만들고 있고, TI 등과 협력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센서 시장규모는 2015년 743억달러(약 80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카메라 이미지센서(CMOS 이미지센서·CCD) 외에도 스마트폰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가속도·자이로·나침반·중력 센서 시장은 고성장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발간한 `스마트카·그린카용 센서시장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용 센서만도 오는 2017년 286억달러(약 30조9881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업계가 글로벌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소기업 중심인 국내 팹리스 시장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공정기술과 회로설계기술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자체 공장(팹)을 보유한 회사가 유리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포라이트의 예처럼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로 센서 시장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삼성전자·애플에 스마트폰용 전자나침반을 공급하는 일본 아사히카세이는 자체 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주생산(파운드리) 업체를 적극 활용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여러 파운드리 업체를 활용하고 있어 자체 팹 제조 물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생산기술에 몰두하기보다는 제품 기획과 설계에 더 많은 공을 들이기 위해서다. 캐논은 오히려 자체 팹이 기술 발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소니가 90나노미터(㎚) 미세화 공정에서 CMOS이미지센서(CIS)를 양산하는 등 모바일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과 달리 캐논은 500㎚ CMOS 공정을 여전히 사용하면서 효율, 감도, 컬러 뎁스(depth)를 개선하는 데 뒤처져 있다. 카메라 전문 업체인 니콘과 라이카가 180㎚, 110㎚로 공정을 바꾸면서 센서 생산 효율성을 높여온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업체들을 제친 국내 팹리스 기업의 성공 사례도 여럿 있다. 멜파스는 터치스크린패널(TSP) 전문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TSP칩 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싸이프레스, 시냅틱스, 아트멜 등 글로벌 터치센서 업체를 제치고 지난해 스마트폰용 TSP칩만 2억개에 육박하는 수량을 판매했다. 터치 키 시장에서도 국내 업체 점유율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TSP 부품·소재 산업이 한국에 집중돼 있어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도 용이하다.

국내 팹리스 기업인 동운아나텍은 스마트폰용 AF 구동칩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가격이 저렴한 게 오히려 대기업의 진입을 막는 방어막이 됐다. 김동철 동운아나텍 사장은 “AF 구동칩은 개발 소요시간이 긴 반면에 가격이 저렴한 박리다매형 시장구조가 정착돼 있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향후 기술력을 기반으로 이와 유사한 시장은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자회사 실리콘화일은 200만~800만 화소급 모바일 카메라용 저가 CIS 시장을 공략해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삼성전자·소니가 1300만 화소 이상 고화소 CIS 시장에서 경쟁할 때 다른 곳으로 시각을 돌려 단가나 수익률은 낮지만 수요가 많은 시장에 주력한 덕분이다.

국내 팹리스 업계는 전자태그(RFID) 기술을 응용한 오염 감지 센서, 온·습도, 근거리·조도 센서 등에 주목해왔다. 개발 완료된 제품도 상당수다. 스마트폰·스마트TV 주변기기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들 제품의 수요도 따라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회준 KAIST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온도·땀·맥박신호 측정 센서나 권오경 한양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하고 있는 의료용 동작 감지 센서 기술이 기술이전 등으로 상용화된다면 웨어러블 컴퓨팅, 헬스케어 기기용 센서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