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위사업청은 `F-15SE 차기전투기 기종 선정안`을 폐기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무기도입 사업인 차기 전투기(F-X) 사업이 원점에서 재추진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구식인 데다 성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F-15SE는 1970년대 낡은 기종을 개량한 것에 불과하고, 최첨단 스텔스 기능을 갖춘 주변국과의 전력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방위사업청이 백기를 든 셈이다. 앞으로 30년 이상 한국 영공을 책임질 차세대 전투기를 그저 싸다는 이유로 들이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이는 국가 전력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업 특성상 무엇보다 안정성과 신뢰성이 우선돼야 한다. 한전은 올 연말 완공 예정인 신파주 변전소의 무효전력보상장치(SVC) 납품업체로 중국 `나리`를 선정했다. 무효전력보상장치는 국내 전력계통에 직접 연결되는 핵심 설비로 문제가 발생하면 전압이 떨어져 광역 정전 위험이 커진다.
나리의 SVC는 구식인데다 경쟁제품에 비해 기술수준도 가장 낮다는 평가다. 이미 국내 한 기업이 한전과 최신 버전인 스태콤(STATCOM)을 공동 개발해 신제주·한라 변전소에서 시범 운영 중임에도 실제 구입할 때는 중국산을 선택했다.
물론 중국산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검증이 되지 않았다. 나리의 경우 해외 설치 실적이 없다. 우리나라가 테스트베드가 돼 나리의 해외 진출을 돕는 형국이다.
사후서비스(AS)도 문제다. 나리가 국내에 유지보수 인력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전에서는 이에 대비해 별도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다. 국산 제품을 구입했으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다.
한전의 고민도 깊다. 가격만 싸지 신경 쓸 게 많다. 그렇다고 구매처를 바꾸자니 원전비리 사건 이후 조심스럽다. 이미 발주했어야 할 신성남변전소 건도 계속 미루고 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다. 값싼 물건은 그만큼 품질도 나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물론 싸다고 무조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싼 이유는 있다. 때문에 국가 주요설비의 경우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전의 설립목적은 주주이익 실현이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