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거친 M&A 파도 되레 즐기자

[신화수 칼럼]거친 M&A 파도 되레 즐기자

거센 파도다. 세계 기술기업들이 죄다 흔들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큰 인수합병(M&A) 소식을 듣자니 파도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거칠어질 듯하다. 지난 주 나온 미국과 일본의 1위 반도체 장비 업체 합병이 압권이다.

시작은 PC 불황이다. 보급 포화에 글로벌경제 위기까지 겹쳐 수요가 잔뜩 위축됐다. 그 불똥이 반도체 시장에 떨어졌다. 치킨 전쟁 끝에 상위 업체만 살아남았다. 그 여파가 반도체 장비 시장까지 갔다.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 도쿄일렉트론이 주저 없이 합병키로 한 것엔 자칫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배어나온다. 업계 재편이 PC, 반도체, 반도체 장비 순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더 큰 파도가 밀려온다. 모바일이다. PC보다 더 크게 요동친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쥐고 흔든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가 남의 손에 넘어갔다. 모바일 시장이 PC처럼 성장을 멈춘 것도 아닌데 업계를 이렇게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전체 휴대폰 시장 이익의 103%를 차지한 이른바 `쏠림 현상` 때문이다.

이 현상은 통신서비스 시장의 특징이다. 상위 사업자에 가입자가 집중되는 것을 뜻한다. 각 산업 영역이 따로 있던 시절엔 통신시장에 국한된 현상이다. 모바일을 앞세운 융합이 각 산업을 연결했다. 덩달아 쏠림 현상도 번져 거의 모든 기술산업을 집어삼킨다.

쏠림 현상이 주는 충격은 시장 정체의 그것보다 더 격렬하다. 단기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멀쩡히 이익을 내는 기업도 순식간에 나락에 떨어뜨린다.

M&A는 이런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이다. 시장 정체에 따른 M&A는 구조조정 성격이 짙다. 쏠림 현상으로 인한 M&A도 유사하지만 조금 더 선제적이다. 사정이 그나마 좋을 때 몸집을 키워 다가올 시장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겠다는 시도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M&A도 이 맥락으로 읽힌다. 팬택은 안타깝게도 이 시점을 놓쳐 떠밀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시장 정체와 쏠림 현상이 겹치다보니 앞으로 `빅딜`이 쏟아져 나온다. 업종 파괴까지 있어 다른 업종과의 M&A 또한 많아진다. 그런데 과거 기술기업 M&A를 돌이켜보면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았다. 지난 2000년 타임워너와 아메리칸온라인 합병이 대표적이다.

실패 요인이야 제각각이지만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의 핵심 기술과 비즈니스 역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계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동종 업종보다 다른 업종 인수 실패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규모까지 큰 빅딜은 자칫 그 자체가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실패 때 복구가 힘들어 치명적이다.

이 점에서 구글, 애플, 아마존, 오라클과 같은 미국 기술기업의 M&A를 주목할 만하다. 언뜻 보면 상관없는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 기업들은 핵심 사업과 연결한 가치사슬 수직화에 아주 철저하다. 부족한 요소 기술을 확보하려고 M&A를 적극 활용한다. 이른바 `스몰딜`이다. 스몰딜의 장점은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이다. 판단 착오로 투자금을 날려도 전문 인력만큼은 건진다. 이를 통해 핵심 사업 역량 강화와 미래 사업 확장을 한꺼번에 잡는다. 그러니 이 기업들의 생태계는 날이 갈수록 공고해진다.

우리 기업들도 M&A 급류에 휩싸였다. 원치 않아도 경쟁사가 그리 하니 어쩔 수 없다. 순항을 하지 못해도 난파를 당해선 곤란하다. 몸집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빅딜이든 체력을 키우는 스몰딜이든 떠밀리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잠깐 거센 파고가 아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