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본 소리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한 번도 안 들어본 소리는 상상만으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이정재 분)의 이마를 칼로 베는 소리를 만들기 정말 힘들었죠. 등갈비, 양파, 귤, 장판 등 다양한 소재를 긁어 나는 소리를 합쳐 최종 소리를 만들어냈죠.”
영화 속 소리만 전문으로 만드는 배우가 있다. 배우들의 거의 모든 소리를 다시 만들어내는 소리전문 배우 `폴리아티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현장 녹음만으로는 관객에게 생생한 음향 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먹는 소리, 화장실 볼 일 보는 소리 등 배우들이 움직이는 모든 소리는 영화 촬영 후 폴리아티스트에 의해 다시 재연된다. 영화음향 제작 회사인 라이브톤에서 만난 폴리아티스트 장찬우씨와 폴리아티스트가 만든 소리를 녹음하는 정승현 폴리레코디스트는 영화 속 소리의 신세계를 들려줬다. 폴리는 무성영화에 처음으로 소리를 입힌 `잭 폴리`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장찬우 폴리아티스트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와 시대가 지난 사극 속 소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난해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극을 녹음할 때가 제일 어렵다”며 “그 시대를 접하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한 뒤에 녹음한다”고 말했다.
장찬우씨와 정승현씨는 영화 `관상` 속 배우들이 내는 모든 소리를 만들었다. 둘은 관상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수양대군의 이마 수술 소리와 천재관상가 내경(송강호 분)의 닭 먹는 소리라고 회상했다. 이마 수술 장면은 들어보지 못한 소리에다가 과장되게 표현해야 돼 더욱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찬우씨는 영화에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먹는 소리를 넣기 위해 닭 두 마리를 연달아 먹어치우기도 했다. 그는 “내경이 정말 맛있게 닭을 먹는 장면을 위해 그 자리에서 닭 두 마리를 실제로 먹으면서 녹음했다”며 “영화관에서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많이 웃어서 뿌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승현 폴리레코디스트는 장찬우씨가 만든 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주거나 소리가 괜찮으면 녹음에 들어간다. 보통 영화 속 소리는 폴리아티스트와 폴리아티스트가 만들어낸 소리를 녹음하는 폴리레코디스트가 2인 1조가 돼 만들어진다.

정승현씨와 장찬우씨는 직업병으로 어디를 가든 소리를 유심히 듣는다고 말했다. 정승현 폴리레코디스트는 “처음 가는 장소에 가면 들리는 소음을 계속 집중해서 들으면서 영화 속 어떤 장면에 이런 소리가 쓰이면 좋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장찬우씨는 “개봉하는 영화 속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고민하면서 다시 만들어본다”며 “도저히 소리가 안 만들어질 때는 직접 소리를 만든 폴리아티스트 분께 전화를 걸어 노하우를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는 폴리아티스트가 채 10명이 안 돼 소리 만드는 법을 서로 공유하고 가르쳐주는 문화가 비교적 잘 퍼져있다.
정승현씨와 장찬우씨는 하루 보통 10시간씩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지만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힘이 난다며 앞으로도 생생한 소리를 계속 만들겠다며 활짝 웃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